
“자본주의는 창조적 파괴를 통해 성장한다.”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을 꺼내들었던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Joseph Alois Schumpeter)는 결국 이런 혁신을 주도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사람, 창업가를 들었다.
7월 18일 용인시 미디어센터에서 용인시 산업진흥원과 더이노베이터스가 개최한 2025년 용인 오픈이노베이션 1회차 교류회에서 강연에 나선 이주열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한 기업가 정신을 주제로 내걸고 슘페터의 말을 빌려 창업가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노키아 이후 핀란드가 한 일=이 교수는 이 자리에서 경제적 발전에 지역적 차이가 존재하는 이유 5가지를 꼽았다. 첫째 기업가 정신과 혁신 활성화 여부다. 이 교수는 “미국 내 182개 도시 중 1위는 혁신가가 많은 도시인 텍사스주 오스틴이지만 꼴찌는 그렇지 못한 디트로이트”라는 점을 든다. 슘페터가 말했듯 결국 중요한 건 사람, 창업가이며 이들이 지역 혁신 활성화를 위한 간접적 지표가 된다는 얘기다. 그 밖에 다른 조건으로는 둘째는 정책 및 제도적 환경을 들 수 있고 셋째는 자본 및 금융 시스템, 넷째는 기술 발전과 산업 구조다.
이렇듯 사람과 혁신이 중요한 시대지만 국내 대학생 창업률은 여전히 답보 상태다. 교육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23년 기준으로 전국 4년제 대학 재학생 창업 기업 수는 1,951개로 2022년 1,581개보다 23.4%나 늘었다. 창업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늘어나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전체 대학생 중 창업 비율은 여전히 1% 미만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교수는 노키아가 사라진 핀란드를 예로 들었다. 노키아는 한때 핀란드 전체 법인세 수입 중 20%를 차지했지만 스마트폰 시대가 도래하면서 몰락했다. 이 교수는 핀란드가 노키아 이후에 어떤 대처를 했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먼저 헬싱키 공대, 헬싱키 경제대학교, 헬싱키 예술 디자인대학 3곳을 합쳐 알토대를 탄생시킨 것. 기술과 비즈니스, 예술을 융합시키겠다는 목표는 핀란드를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활발한 창업 생태계로 탈바꿈시켰다.
교육에도 힘을 쏟았다. 이 교수는 핀란드에선 교사가 되려면 석사 학위가 있어야 하며 노키아 출신을 교사로 흡수해 자연스럽게 이론과 현장을 결합하는 시도를 했다고 강조한다. 노키아는 사라졌지만 창업 DNA를 교육에 이식해 혁신 창업의 길을 연 것이다.
기업가적 사고는 현실과 맞닿아 있다. 이 교수는 “기업가는 세상 다양한 문제를 비즈니스 기회로 본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도 현실적 문제가 되고 있는 저출산 문제나 지역 소멸 위기도 이들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 기업가는 문제 정의와 기회 발견, 솔루션이라는 일련의 절차를 통해 혁신 비즈니스를 창출해낸다.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 이유다.
기업가 정신은 지역 문제에도 똑똑하게 대처할 방안을 찾아낸다. 이 교수는 이 같은 혁신에 대한 예로 홍콩에서 지역 커뮤니티와 구세군이 함께 진행한 더기프트박스(The Gift Box) 프로젝트를 들었다. 이사용 박스에 가져갈 물건(keep)과 기증할(Gift) 물건을 간단하게 박스에 표시하도록 해 이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물품을 기부로 연결, 폐기물을 줄이는 한편 나눔도 실천할 수 있도록 한 것.
일본에서 진행한 라이스 코드(Rice Code) 프로젝트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쌀 소비가 줄어드는 데다 인구 고령화 문제까지 겪고 있는 일본에서 진행한 이 프로젝트 아이디어는 다양한 색상 벼를 심어서 논에 거대한 그림을 만드는 논아트를 하는 것. 스마트폰으로 스캔하면 QR코드처럼 작동해서 쌀을 구매할 수 있도록 했다. 이 프로젝트는 5개월간 25만 명에 달하는 관광객을 유치하는 효과도 거뒀다고 한다.
이 교수는 행사가 진행된 용인시를 위한 조언으로 첫째 기업가 정신 교육을 확산시키고 둘째 산압 단지 CEO를 대상으로 스타트업 생태계를 매칭하고 셋째 시민 참여 지역 사회 문제 해결 공모를 진행하는 걸 제안했다. 이 교수는 “일단 아주 작은 성공 사례부터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 현대건설과 SM컬처파트너스가 오픈이노베이션을 대하는 자세=이 날 행사에도 오픈 이노베이션을 위한 수요 기업과 스타트업 성공 사례가 함께 소개되기도 했다. 현대건설 오픈이노베이션 담당자인 김정한 책임 매니저는 사내 변화를 유도하고 혁신 촉진을 위해 2022년부터 오픈이노베이션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매년 2회 전사 대상으로 협업 요구 사항을 발굴하는데 김 매니저 설명에 따르면 매년 50개 정도 니즈가 나온다고 한다.

현대건설은 자체 공모전 외에도 민관 혹은 산학 협력 네트워크 구축에도 적극적이다. 중기부나 서울시 산하 서울경제진흥원, 한양대, 성균관대 등 창업중심대학 등과 협업을 진행 중이다. 2022년부터 서울경제진흥원과 진행 중인 오픈이노베이션에는 매년 200여 개 기업이 지원했으며 누적 발굴 기업 579개, 선발 기업 35개, 후속 협업 7개사 등 실적을 쌓고 있다. 올해 상반기에도 10여 개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김 매니저는 현대건설이 진행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의 강점으로 글로벌 진출 지원을 꼽았다. 해외 현장 PoC 기회를 제공하고 현대건설 글로벌 네트워크를 활용해 해외 진출을 적극 지원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박준형 SM컬처파트너스 이사는 사내 비전이 “기술을 만나 무한히 확장하는 분야”라고 말한다. SM컬처파트너스는 사실 VC 라이선스를 딴 건 지난 3월이다. 몇 개월 남짓 지났을 뿐이지만 벌써 투자 내역이 공격적이다. 투자 기업 수는 17개, 투자금은 340억원에 이르는 것.
박 이사는 SM컬처파트너스가 진행하는 특징으로 “실전형 PoC를 많이 요청한다”는 점을 들었다. 그는 “알고 보면 엔터 산업은 독특한데도 불구하고 다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다. 엔터 산업은 팬덤 비즈니스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여타 산업과는 다르다. 그 뿐 아니라 신기술 도입에도 보수적이라는 설명이다. 박 이사 표현을 빌리자면 “에스파 상품에 신기술 도입했다고 BTS 팬이 좋은 기술 나왔다며 팬을 옮겨오겠냐”는 이유다.
투자 포트폴리오를 보면 박 이사가 서두에 밝힌 사내 비전이 다시 떠오른다. 엔터 산업에만 투자했을 것 같지만 SM컬처파트너스는 비대면 진료 기업인 솔닥이나 숙박 시설 브랜드는 지냄, 중고 패션 거래 플랫폼인 마인이스 등 “여기에 왜 투자했을까” 싶은 기업에도 투자했다. 사실 비대면 진료는 연예인에게 멘탈케어나 직업상 비대면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숙박 시설은 해외 작곡가나 연예인이 체류할 때 숙박 공간 문제에서, 중고 패션 거래는 연예인 등 협찬 혹은 구입 의상이나 협업을 통한 사업화 등 이유를 들어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수 있다. 다른 산업과 마찬가지로 엔터 역시 접점을 통해 “무한한 확장성”을 보일 수 있다.

그 밖에 디지로그 글로벌 상사를 지향하는 풀로그 박재성 CEO는 인도와 인도네시아 시장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이들 국가가 각각 인구 1위, 4위 국가인 거대 신흥 시장일 뿐 아니라 자원 부국이라는 점, 제조업 성장 속도가 빠른 곳인 만큼 글로벌 공급망 면에서 유망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날 행사에선 오픈이노베이션 성공 사례로 나인와트, 블랙후즈, 그린루프도 각각 발표에 나섰다. 최광선 더이노베이터스 대표는 이번 행사가 스마트 기술에 초점을 맞추고 공간과 문화의 글로벌 연결을 주제로 삼았다며 관련 스타트업에게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