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조경 시장은 7조 규모 거대 시장이지만 아직도 아날로그로 남아있는 산업 중 하나다. 이 노후된 시장에서 디지털 혁신을 일으키겠다며 등장한 곳이 있다. 바로 수목 유통 스타트업 루트릭스다. 국내외에서 조경을 연구한 구성원들로 뭉친 루트릭스는 국내 조경 산업의 나무 데이터 부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됐다. 정보 비대칭이 큰 조경 시장에서 누구나 쉽게 수목을 구매하고 유통할 수 있는 거래 플랫폼을 선보이며 아날로그 시장을 디지털화하고 있다.
안정록 루트릭스 대표는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덕분에 자연이 삶의 일부처럼 익숙하다. 고등학교 과외 활동으로 DMZ 생태 연구를 하게 된 것도 순전히 자연의 아름다움 때문이었고 자연스럽게 환경생태공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대중에게는 닿지 않는 학문이라고 느낀 그는 조경이란 것을 알게 된다. 조경은 건축물 외부의 모든 것을 설계하는 것을 말한다. 이후 관련 전문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에 하버드 건축 대학원 조경설계학과에 진학, 조경을 본격적으로 공부했다. 코로나19 때문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그는 온라인으로 학업을 마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오히려 루트릭스를 창업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줬다. 공통의 관심사를 가진 김유겸 공동창업자와 공부 차원으로 컴퓨테이셔 디자인 설계 프로젝트를 하다가 루트릭스를 창업하게 된 것. 빠른 실행력으로 사업 계획서를 만들어 창업 경진대회 유니콘하우스 시즌1에 참여하면서 시드 투자도 유치했다.
안 대표는 수목 유통 과정 문제를 기술적으로 해결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투명한 거래 환경을 만들어 주는 일이었다. 나무 농장 이미지, 수종, 규격 등을 수집해 정확한 수목 데이터를 제공하고 수목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시키는 수목 거래 플랫폼을 개발했다.
안 대표는 “수목 공급자들은 판로 확보의 어려움이 있고 소비자는 원하는 수목 정보를 찾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하지만 소수의 중개업자들이 많은 수수료를 받고 거래를 주도하기 때문에 서로 연결되기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나무 농장들은 판매처를 찾지 못해 나무를 버리기도 한다.
안 대표는 “플랫폼을 통해 수요자와 판매자를 연결하고 조경 시장에 숨겨진 수요를 끌어내는 것이지 기존 시장을 파괴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조경 시장이 원활하게 돌아가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루트릭스는 현재 10만 이상 수목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고 직접 사람이 발품을 팔며 데이터를 수집하는 대신 드론과 라이더 기술을 활용해 수집하는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수목 데이터 수집 플랫폼을 비롯해 새로운 사업도 추가해가고 있다. 공장에서 집을 다 지은 후 배달만 해주는 것처럼 조경에도 이를 접목한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안 대표는 “조경이 필요한 비전문가를 위한 올인원 서비스로 소유지에 자연 공간을 들이고 싶은 누구나 쉽고 편하게 공간을 꾸밀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조경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 친화적인 공간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고자 한다.
루트릭스가 최종적으로 목표하는 것은 글로벌 조경 시장이다. 국내에서 수목 데이터 시스템을 안정화 시킨 후 미국 시장까지 진출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글로벌 무대에서 뛰고자 하는 관련 분야 인재들도 적극 채용하고 있다. 안 대표는 “팀원들끼리 나중에 성공하면 강남에 빌딩을 산 뒤 거기에 다른 거 없이 나무 한 그루만 심자는 얘기를 재미 삼아 한다”며 “그만큼 자연의 가치를 알리는 일을 하고 싶고 좋은 영향력을 남기는 것이 목표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