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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견기업이 오픈이노베이션 참여 기업에 바라는 것들


이석원 기자 - 2024년 10월 30일

10월 29일 용인시청 문화예술원 3층 국제회의실에 제약, 건설, 소재 분야 대기업이 한자리에 모였다. 용인시산업진흥원, 더이노베이터스가 진행한 용인 오픈이노베이션 네트워킹데이 챕터 02 행사를 위한 것. 용인시산업진흥원은 내년부터 오픈이노베이션 생태계를 구축해나갈 계획이다. 이번 행사는 이를 위한 사전 준비 성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날 주제는 스마트시티&헬스케어. 가장 눈길을 끈 건 대‧중견 기업 그러니까 수요 기업이 왜 오픈이노베이션을 하고 스타트업에게 어떤 걸 바라고 있느냐였다.

혼자 가면 빨리 가는 것 같지만 완주하기 어렵다=양성은 대웅제약 C&D이노베이션팀장은 오픈이노베이션을 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양 팀장 설명을 빌리자면 글로벌 제약 바이오 회사 생존 전략도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다.

실제로 2020년 기준으로 R&D 투자 규모가 가장 큰 제약바이오 기업 20곳 가운데 45% 이상이 파이프라인을 외부에서 도입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승인 받은 신약 가운데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한 신약 개발에 성공한 비율도 34%다. 기존 사내 R&D를 통해 탄생한 신약 개발 성공률이 11%라는 점을 감안하면 무려 3배 이상이다. 화이자 같은 기업이 코로나19 백신이 폭증하면서 100조원을 찍은 시장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굳이 외부에서 혁신을 들여와야 하나” 싶겠지만 현실은 다른 것.

대웅제약 역시 “오픈 콜라보레이션 활성화에 진심”이라는 설명이다. 그도 그럴 게 대웅제약은 팁스 운영사이면서 사내 벤처 프로그램, 대웅인베스트먼트 같은 CVC를 운영 중이다. 2008년부터 대웅제약이 투자한 금액은 2,000억 원 가량. 물론 이 가운데 1,500억 원은 해외지만 500억 원은 국내 스타트업에 투여했다. 지난해에도 200억원 펀드를 결성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 덕에 대웅제약은 60개 혁신 기업을 발굴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매년 이노베어 공모전도 개최한다. 2026년 입주 예정으로 서울 마곡에는 DIC 스튜디오를 짓고 상생 생태계를 위한 핵심 기지로 삼을 예정이다. 이런 노력 덕인지 대표적인 사례만 봐도 펩트론이나 인수합병으로는 지금은 본사 주가를 넘어설 만큼 성장한 한올바이오파마 등 꽤 성공적이다.

양 팀장은 대웅제약이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게임체인저 기술을 찾는다”고 말한다. 주요 분야라면 바이오 소재, TPD, 줄기세포 치료제, 유전자 치료제, 면역세포 치료제, 차세대 항체 치료제 등이지만 최근에는 모비케어나 리브레 등 웨어러블 디바이스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고 한다.

양 팀장은 대웅제약이 지닌 강점으로 신약 3종을 출시한 경험을 든다. 경험이 있는 만큼 블록버스터를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다는 것. 신약 분야에선 임상이 빠를수록 좋은데 조직 내부에 쌓인 노하우가 스타트업과 윈윈하는 키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호반그룹이 오픈이노베이션 참여 기업에 바라는 3가지=39개나 되는 계열사를 거느린 호반그룹 역시 오픈이노베이션은 현재 진행형이다. 대기업이 오픈이노베이션을 진행하다 보면 내부 소통이 중요할 수 있다. 김재은 오픈이노베이션팀장은 이를 위해 오픈이노베이션협의체 회의를 그룹 차원에서 격주마다 운영 중이라고 말한다. 이 자리에선 정보 공유나 계열사 등에서 필요한 기술을 논의한다. 그 뿐 아니라 그룹 내부원을 위해 정기 뉴스레터를 발행해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호반그룹은 이제까지 59건, 120.8억원을 스타트업에 투자했다. 그 뿐 아니라 올해로 5회째를 맞은 호반혁신기술공모전이나 하이데모데이 같은 행사도 진행한다.

그래서인지 사례도 많다. 기업용 스마트 탄소배출 관리 솔루션 기업인 래빗의 경우 호반건설 전체에 플랫폼을 도입한 상태. 제철 부산물을 활용한 시멘트 대체제를 개발하는 포스리젠 역시 호반건설과 산업 공동 주택 전체 현장에 적용했다. 에너지 절감형 자동차 스마트 윈도 필름을 만드는 디폰 역시 본사 사업 등 다양한 PoC 제공을 추진했고 실감형 메타버스 공간 큐레이션 솔루션 기업인 로위랩코리아도 위파크 제주, 호반써밋 화성 비봉 등에 가상 M/H를 구축했다. 아파트 하자 관리 플랫폼 기업인 이음 플랫폼은 호반 입주민 전용 플랫폼으로 역할을 확장해 적용했다.

호반그룹은 자신을 “공간을 만드는 기업”으로 정의하고 이를 위한 수요 기술을 찾는다. 김 팀장은 오픈이노베이션을 진행하면서 호반그룹이 수요 기업 입장에서 스타트업에 바라는 점으로 3가지를 든다. 첫째는 협업 목적에 정확하게 부합하느냐다. 스타트업을 단순히 지원하는 게 아니라 둘다 윈윈하기 위한 협업이라는 점,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위한 전제 조건으로 유의미한 협업 성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얘기다. 둘째는 기술 성숙도 확보다. 콘셉트 검증이나 시제품 시험, 실용화, 상용화 등 협업 목표에 맞는 기술 성숙도 확보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공동연구개발이나 수요 기업 현장 도입 같은 명확한 목표 설정에 따른 기술 역량 확보가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 셋째는 명확한 소통과 유연한 협업 태도다. 수요기업이 아무래도 대기업이다 보니 복잡한 의사 결정 구조나 보수적 시스템에 대한 적응이나 이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광페인트가 오픈이노베이션을 시작한 이유=조광페인트라고 하면 상호명에 보이는 페인트라는 말 때문에 자칫 오픈이노베이션 역시 관련 분야에 국한된 게 아닐까 오해할 수도 있다. 조광페인트 신사업팀 서순석 실장은 “실제로는 조광페인트 전체 매출 30%는 소재에서 나온다”고 말한다. 조광페인트가 바라보는 방향 역시 소재다. 소재전문기업으로 거듭나려 한다는 것.

조광페인트가 오픈이노베이션을 도입한 건 3년 남짓. 서 실장은 오픈이노베이션을 실시한 가장 큰 이유로 “오래된 기업일수록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한 폐쇄성 때문”이라고 말한다. 조광페인트는 700억 규모 펀드를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지난 2022년 PoC를 진행한 친환경 신소재 기업인 케미폴리오를 들 수 있다. 처음에는 원하는 수준이 나오지 않았지만 2023년 다시 경상대와 3자가 공동으로 바이오수지 개발에 나섰다. 방열 소재 기술을 보유한 LFP 역시 오픈이노베이션 사례 가운데 하나다.

조광페인트는 오픈이노베이션으로 바라는 기대 효과에 대해 신사업 동력 확보나 협력적 파트너십 확보, 연구개발 효율성 증대, 기술 성장력 확보, 외부와의 협업 거부감 저하, 신기술 관심도 상승 등을 든다. 물론 서 실장은 이 중에서도 가장 큰 점이라면 내부적으로 일하는 방식이 변화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서 실장 설명을 빌리자면 오픈이노베이션을 처음 실시할 때만 해도 “반년 정도는 오픈이노베이션이 뭔지 내부원에게 설명하는데 할애해야” 했다. 당장 오픈이노베이션을 시작해도 처음에는 대상 기업을 협력업체 다루듯 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요즘은 내부원 생각 자체가 바뀌었다는 것. 지금은 필요한 기술을 보유한 스타트업을 찾아달라는 내부원 요청이 많아졌다고 한다.

조광페인트는 매년 수요기술을 업데이트한다. 이번에 보여준 장표를 보면 화학,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로봇, 우주/항공, 바이오 등 분야별로 세세한 수요 기술을 나열하고 있다. 페인트를 떠올리게 했던 이 기업이 소재전문기업으로 가는 길에도 오픈이노베이션이 큰 조력자가 될 수 있겠다 싶은 대목이다.

이 날 행사에는 수요 기업이 아닌 스타트업도 사례 참여에 나섰다. 에너지 절감에 초점을 맞춘 스타트업인 엔엑스가 그 주인공. 이 회사 남주현 대표는 한국동서발전과의 협업 사례를 소개했다. 남 대표는 한국동서발전이 국내 전력 중 15% 가량을 담당하고 있지만 화력 중심이다 보니 어느 순간 “기후 악당이 되어버렸다”고 말한다. 해결책으로 선택한 게 바로 오픈이노베이션이다. 양사가 손잡고 주로 대학을 대상으로 에너지 효율화 사업에 나선 것. 남 대표는 에너지 신경망을 구축해 20% 에너지 절감은 물론 안전사고 예방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한다.

`◇ 크라우드소싱 오픈이노베이션을 위한 지침서=이 날 행사에서 최광선 더이노베이터스 대표는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세스와 환경의 이해’를 주제로 강연을 진행했다. 최 대표는 혁신에는 당연히 목적이 중요하며 이에 따라 회사 전략에 무게 중심을 둬야 한다면서 다양한 오픈이노베이션 모델을 소개했다.

크라우드 소싱 역시 오픈이노베이션이 즐겨 사용하는 방식 가운데 하나라는 설명이다. 지난 2006년 넷플릭스는 영화 추천 시스템 정확도를 10% 개선할 수 있는 이들에게 100만 달러 상금을 제공하는 프로그램(Netflix Prize)을 실시했다. 이 대회에는 전 세계에서 4만 개 이상 팀이 참여했다. 레고는 지금도 팬이 새로운 레고 세트에 대한 자체 디자인을 제출할 수 있는 플랫폼인 레고 아이디어를 운영한다. 신선하고 혁신적인 디자인 아이디어를 외부에서 크라우드 소싱으로 공급받고 있는 것. GE는 비행 효율성을 개선하기 위한 경연 대회(Flight Quest challenge)를 실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포스코 아이디어 마켓플레이스나 LG 디스커버리랩, 삼성 씨랩 오픈 이노베이션 등 다양한 크라우드 소싱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최 대표는 크라우드 소싱을 통한 오픈이노베이션이 주는 장점으로 사고의 다양성 확대, 혁신의 사각지대 발견, 비용 효율성, 위험 분산, 속도 등 5가지를 들었다. 물론 반대로 위험 요소도 있다. 잠재적인 지적재산권 통제 문제라든지 기밀 유출 우려, 솔루션 품질 관리 어려움, 잠재적인 외부 동기에 대한 의존성, 회사 문화와 가치에 대한 반영이 어렵다는 점, 솔루션 통합 어려움, 의외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부 직원 사기 같은 문제다.

이런 점에서 최 대표는 크라우드 소싱 참여도를 높이려면 문제를 정확하게 정의하고 필요한 배경을 제공하는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이 필요하다는 점, 금전적 보상이나 인정 혹은 기타 인센티브 등 인센티브가 필요하다는 점, 해당 분야 관심자에게 정확하게 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도달 범위, 참여자에게 지속적인 피드백을 제공해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피드백 메커니즘 등 4가지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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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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