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9일 용인시청 문화예술원에서 용인시산업진흥원이 주최하고 더이노베이터스가 주관한 용인 오픈이노베이션 네트워킹 데이 마지막날 행사를 열렸다. 이번 행사는 지난 10월 8일 열린 1회차 미래 모빌리티(관련 기사 : 오픈이노베이션과 미래 모빌리티가 만난 날), 29일 2회차에선 스마트시티&헬스케어(관련 기사 : 대‧중견기업이 오픈이노베이션 참여 기업에 바라는 것들)에 이은 것으로 이 날 주제는 AI·반도체·소재/부품/장비였다.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큰 과녁을 놓고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투자자나 대기업, 스타트업 사례로 꾸민 자리인 것.
물론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말이 꽤 오래 전부터 스타트업계에서 화두로 자리잡은 마당에 용인시산업진흥원이 그것도 3회에 걸쳐 이 주제를 다루는 이유가 뭘까 궁금할 법도 하다. 마지막 날 행사는 이런 의문에 대한 답을 들어볼 수 있는 자리이기도 했다.
◇ 韓 지역 산단 기업이 지닌 4가지 고민=호서대 벤처기술창업대학원 이주열 교수는 “뭐든 변화에는 인식의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며 운을 뗐다. 그는 보통 마케팅은 습관의 변화라고 할 만큼 핵심은 습관을 바꾸는 것이며 인식을 전환하는 핵심은 교육이라고 말한다. 이 교수는 “이를 위해선 창조적 소수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야 하며 심도 깊은 교육과 멘토링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결국 오픈 이노베이션도 마찬가지라는 얘기다. 아직 용신시산업진흥원 측 설명을 들은 건 아니었지만 3회에 걸친 이 행사의 노림수가 심도 싶은 교육과 이를 통한 창조적 소수를 만드는 시발점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
기업이 성장하는 방향성은 크게 포커스(Focus)와 비욘드(Beyond) 2가지로 나눌 수 있다. 포커스가 사업 핵심이라면 비욘드는 성장하는 사업을 위해 어떤 기술을 선점해야 하는냐의 문제다. 이 교수는 기업 성장을 위해선 “What이나 How보다 Where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성장하는 사업이 어디인지를 아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변화가 기업에게 필요한 이유는 사실 간단한 지표로 확인해볼 수 있다. 지난 10년 전 국내 시가총액 TOP10 기업 중 10년 뒤 순위권에 이름을 올린 기업은 4곳에 불과하다. 전 세계 시가총액 기업을 봐도 이젠 엔비디아와 애플이 1∼2위를 두고 일주일새 경쟁하는 사이가 됐다. 시가총액이라는 건 바꿔 말하면 그 기업이 지닌 미래 성장 가능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새로운 성장 모델이 기업에게 중요한 이유다.
새로운 성장 모델 관점으로 보자면 현재 보유한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기존 고객을 공략하는 주력 사업을 강화는 전략, 기존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새로운 고객을 창출하는 인접 사업 진출 전략, 현재 보유한 게 아닌 역량 확보를 통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확장 영역 진출이라는 비관련 사업 다각화 전략으로 나눠볼 수 있다. 물론 신규 사업이라는 건 어떤 기업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다. 기존 사업을 바탕으로 한다면 75%이던 게 기술 개발형 사업으로 가면 45%, 시장 개척형 사업은 35%, 다시 비관련 사업 다각화형으로 가겠다고 나서면 25%로 뚝 떨어진다.
오픈 이노베이션은 이런 신규 사업 진입을 돕는 역할을 한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도입하는 기업 80%가 매출이나 수익 증가를 얻을 수 있었고 신제품에 대한 시장 도입까지 평균 30%가 단축되는 혁신 가속화를 누릴 수 있었고 R&D 비용이 최대 50% 줄어드는 비용 절감‧효율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
여기에서 중요한 건 오픈 이노베이션이라는 말 자체가 “기업 혁신은 내부에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기본 골자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지속 성장을 위한 기업을 위한 성장 전략 방법론이라는 얘기다. 이 교수는 오픈 이노베이션의 장점으로 “내부 성장만을 위한 게 아니라 함께 성장하는 제로섬이 아닌 윈윈 게임이라는 게 가장 큰 특징”이라고 말한다.
용인시도 그렇지만 우리나라 자체가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산업단지를 중심으로 기존 산업을 키워온 경우가 많다. 이 교수는 이런 산업단지 기업의 경우 스타트업 생태계를 잘 모르는 데다 투자에 대해서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지적한다. 국내 산단 기업이 지닌 문제점을 보자면 첫째 창업자가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점, 둘째 자녀는 사업을 물려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 셋째 우수 인력이 지방까지 내려오지 않으려 하고 전문 경영인을 모시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점, 넷째 엑싯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규모에 차이가 있지만 후계자난을 겪는 일본 중소 기업 문제와도 비슷한 점이 있다. 일본에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소기업과 창업을 꿈꾸는 젊은 경영인 후보를 매칭해주는 일본식 서치펀드가 탄생하기도 했다. 사장이 될 만한 인재에 투자하는 펀드인 것.
이 교수는 이런 점을 고려하면 우리나라에서도 “새로운 기술과 비즈니스 모델을 접목해 엑싯할 수 있는 방향이나 방법을 제시해줘야 한다”면서 오픈 이노베이션이 기업을 위한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할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지역 산단 기업에 오픈 이노베이션이 진짜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오픈 이노베이션은 국내 지역에 산재한 지역 산단 기업이라는 지역 사회 문제를 해소할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 센터를 통해 지역 산단 기업과 우수 기술력을 지닌 스타트업을 이어주는 것이다. 실제로 신한금융은 제주도와 지역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데 오픈 이노베이션 방법론을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 용인시가 계획 중인 스케일업 트랙과 전용 펀드=지역 산단 기업과 오픈 이노베이션이 만날 연결 고리를 찾고 보니 용인시가 왜 오픈 이노베이션에 주목하는지는 꽤 명료해졌다. 그렇다면 용인시는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을까. 용인시산업진흥원 미래산업팀 정이삭 팀장은 용인시 소재 기업이 성장하려면 자금 조달과 R&D가 필요하지만 민간 자금 유치나 R&D 인프라 활용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말한다. 정 팀장은 “용인시가 제공하려는 건 결국은 밸류업”이라고 밝혔다.
진흥원이 이를 위해 세운 벤처기업 스케일업 트랙은 R&D 트랙, 실증 트랙, 기업간 협력 트랙 3가지다. R&D 트랙은 먼저 반도체 소부장 국산화 기술 개발 지원으로 기업당 5,000만 원 이내로 2개사를 선정할 예정. 제품 고도화와 성능 평가/개선, 장비 사용, 지재권 확보 등을 돕는다. 2번째는 반도체 정부 R&D 과제 기획 지원으로 4개사를 지원할 예정이다. 공고는 2025년 1분기 예정이다.
실증 트랙은 수요 지정형 실증 지원, 공급형 실증 지원 2가지로 나뉜다. 수요지정형 실증 지원은 용인시나 지역 사회 문제를 해결할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지역 실증 지원으로 1개 과제당 지원금 5,000만 원 예정이며 내년 3월 중 안내할 예정. 공급형 실증 지원은 새로운 기술을 지닌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실증 지원으로 주제는 자유다. 지원금은 같으며 내년 1분기 중 과제를 안내할 예정이다.
기업간 협력 트랙은 먼저 오픈 이노베이션 PoC 지원을 기업별 1,500만 원 내외로 모두 3개사를 지원할 예정이며 2025년 용인 오픈 이노베이션 세미나를 연 2회 개최해 대중견기업과 벤처기업간 협업 과제 발굴에 나설 예정이다.
정 팀장은 “물론 밸류업만 하는 건 아니라 투자도 연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카이스트창업투자, 영덕 소공인스타트업 허브, 시스템 반도체 오픈랩 등을 통한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과 시드 투자 연계, 벤처창업투자 펀드 등 전용 펀드 투자 연계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용인시산업진흥원 측은 원활한 협의를 위해 내년에는 기업 중심 협의회도 꾸릴 방침이다. 분과는 크게 시스템반도체와 소부장 등 반도체, 응용기업이나 기술 공급 기업을 포함한 AI/DX로 나누고 분과별로 10개사 이내로 만들 방침이다. 기준은 용인시에 본사나 연구소, 공장 등이 소재한 곳 중에서 기업 규모나 성장성, 협력 의사 등을 종합 평가해 선정한다. 기업 중심 협의회에 대한 공고는 12월 중에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이를 위해 진흥원 내에는 분과별 협의회, R&D 트랙, 실증, 기업간 협력 트랙, 투자‧IR 담당자도 지정한 상태다.
한편 이 날 행사에선 솔루엠, 삼익매츠벤처스, 네이버클라우드, 로드피아, 뉴놉 등 대중견 기업과 CVC, 스타트업 등이 발표에 나서기도 했다.
- 솔루엠 : 전자부품 제조업, ICT 관련 기업으로 지난해 매출 1조 9,511억 원. 전 세계 5개 생산 법인과 8개 판매 법인 보유. 주요 분야는 ESL 태그, 파워&에너지, 헬스케어, 센서, 디스플레이 5가지로 올해 오픈 이노베이션 관련 팀 설립. 주요 사례로는 아치서울 QR오더, 슬립웨이브 이어버드, 피치AI 솔루션 등이 있다. 김정훈 그룹장은 하드웨어 제작 능력과 공동 생산, 글로벌 판매 거점 등을 스타트업에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강점으로 들었다.
- 네이버클라우드 : 백선경 매니저는 “SMB 성장이 곧 네이버 클라우드 성장”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미 3,000개 이상 스타트업, 70여 개에 이르는 AC/VC와 협력 중이며 오픈 이노베이션 외에 전략적 투자, 6개 글로벌 지사를 통한 글로벌 시장 진출 등을 돕는다. 네이버클라우드가 오픈 이노베이션에 필요로 하는 수요 분야는 클라우드 기반 버티컬 특화 솔루션, 생성현 AI, 그 외 자유로운 협업 제안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올해 오픈 이노베이션 관련 협업은 9건 진행했고 이 중에는 용인시산업진흥원과 진행한 상생 협력형 혁신 지원 사업도 포함되어 있다.
- 삼익매츠벤처스 : 삼익THK 산하 CVC다. 삼익THK는 1960년 설립된 삼익공업사에서 시작해 2014년 이후 사업 다각화에 나서 다관절 로봇, 메카트로닉스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회사 비전을 “세계 최고 수준 공간과 동작의 가치 창조 기업”으로 재정의하고 2022년 삼익매츠벤처스를 설립했다. 신광수 투자심사팀 차장은 오픈 이노베이션 사례로 로보스와 진행한 경남로봇랜드 물류 자동화, 도구공간과 진행한 공장 내 무인화 경비 솔루션 등을 들었다. 주요 투자 분야는 로봇, 스마트 팩토리, 소부장, AI 등이다.
- 뉴놉 : 생성형 AI 마케팅 솔루션인 틱팝(https://tickpop.com/)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국내 5인 미만 기업 비율이 86.3%에 이르는 상태지만 생성형 AI를 이용하려면 프롬프트 작성이나 사용 방법에 대한 어려움을 느끼고 품질이나 요구 사항에 대한 정확도 불분명, 영상, 이미지, 보이스 생성형 AI를 각각 따로 이용해야 한다는 점, 높은 유료 플랜 비용 등이 걸림돌이던 문제를 해소하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 로드피아 : GIS, 스마트 공장 솔루션 구축 솔루션을 보유한 기업으로 B2C 서비스 챗봇, B2B 스마트공장 솔루션 OCR, 내부 업무 효율 개선에 클로바노트를 이용해 HCX 기반 서비스 고도화에 나섰다. 챗봇 상담 시스템을 도입해 상담 응답 시간을 줄이고 네이버 하이퍼 클로바X를 통해 질의 파악 정확도와 답변 만족도를 높였다. 낮은 스마트공장 효율 이유 중 하나가 수기 사용이라는 점을 감안, 기존 아날로그 수기 기록을 디지털 정보로 변환하는 OCR을 적용해 효율을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