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류는 오래전부터 문명을 일궈 왔지만 먼 옛날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도 DNA 분석 기술과 연대 측정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거 세계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조금씩 드러나고 있다. 과학 유튜브 채널 쿠르츠게작트(Kurzgesagt)가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갈 무렵인 1만2,000년 전부터 이어진 인류 역사를 짚었다.
쿠르츠게작트가 처음 다룬 곳은 1만2,000년 전 아시아 서쪽 끝인 지금의 시리아 북부에 있던 카라한 테페(Karahan Tepe)다. 이곳은 기록상 가장 오래된 인류 정착지 유적으로 여겨진다. 이곳에 모인 수백 명은 돌과 나무로 만든 도구로 암반을 깎아 높이가 수m에 이르는 T자형 기둥에 동물을 새겼다. 그중에는 벌거벗은 사람이 자신의 생식 능력을 자랑스럽게 드러내는 모습이나 새와 짐승을 본뜬 조각도 있었다.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업했는지 그리고 왜 이런 걸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석기시대로서는 엄청난 규모의 사업이었고 지구 전체로 보면 새 시대의 시작이었다는 점이라고 쿠르츠게작트는 짚었다.
◇ 농업이 연 정착 생활=여기서부터 놀라운 진보가 잇따른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먹을 수 있는 식물 일부를 땅에 묻어 두면 이듬해 다시 자라고 전보다 더 크고 풍성하게 열린다는 사실을 배워 왔다. 빙하기가 끝나고 기후가 안정되자 사람들은 야생 식물을 채집하는 대신 직접 기르기 시작했다. 농업은 여기서 비롯됐다. 정착지와 공동체, 의례와 신앙도 농업을 중심으로 발전했다.
식량이 늘자 인구가 증가했고 새로운 전문 직업이 생겼다. 교역망이 넓어졌으며 최초의 장인과 예술가가 등장했다. 쿠르츠게작트는 이어 1만 년 전부터 8,500년 전까지 문명을 다뤘다. 이 무렵 인류 인구는 500만~1,000만 명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여러 공동체가 저마다 다른 생활 방식을 시도했고 일부는 성공했지만 일부는 사라졌다. 이미 오랜 역사를 지닌 교역망은 더 발달해 구슬과 조개껍데기 그리고 무엇보다 흑요석이 수백km를 오갔다. 이 시기에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공동체가 태어났다.
카라한 테페에서 조금 서쪽으로 떨어진 곳에서 차탈회위크(Çatalhöyük)라는 유적이 발견됐다. 8,500년 전 수백 명이 살았던 것으로 보이는 도시다. 이 마을에는 독특한 건축 양식과 생활 방식이 있었다. 거리도 골목도 없이 집들이 서로 바짝 붙어 늘어서 있었고 사람들은 나무 사다리와 다리를 이용해 지붕에 뚫린 구멍으로 드나들었다.
집 안은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방에는 동물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회반죽을 바른 황소 두개골이 벽에 박혀 선명한 붉은 황토로 칠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빵과 견과류, 치즈를 먹고 맥주를 마셨던 것으로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자기 집 아래에 묻었다가 몇 년 뒤 시신을 파내 두개골을 떼어 낸 다음 장식해 집 안에 두는 기묘한 풍습도 있었다.
시간이 더 흐르자 농경민은 서남아시아에서 여러 방향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서로 다른 집단이 만나 물자를 교역하고 기술을 나눴으며 때로는 같은 땅을 두고 다퉜다. 이 시대 흔적으로 화살이나 곤봉 같은 무기에 다친 흔적이 남은 인골과 화살촉이 박힌 시신 여러 구를 한데 던져 넣은 장소가 발견됐다.
◇ 빙하호 붕괴가 바꾼 기후=8,000년 전까지 농경 공동체는 서남아시아 대부분으로 퍼졌고 유럽에도 진출했다. 새로운 생활 방식이 번성하는 듯했지만 8,200년 전 세계를 뒤흔든 환경 대변화가 일어났다. 북아메리카 대륙에 있던 거대한 빙하호인 애거시 호수(Lake Agassiz)가 무너진 것이다.
북아메리카에서는 빙하기가 저물며 물러난 빙하가 지구 역사상 손꼽히게 큰 호수를 만들었다. 이 호수 물은 거대한 빙상에 가로막혀 있었는데 빙상이 녹으면서 갑자기 터졌다. 호수 물이 한꺼번에 바다로 쏟아져 전 세계 해수면이 1~2m 높아졌다. 따뜻한 바닷물을 북쪽으로 실어 나르는 거대한 해양 순환도 약해졌다.
그 결과 북대서양에서 유럽과 근동에 이르는 지역 기후가 차갑고 건조해졌다. 일부 지역은 기온이 몇 도나 떨어졌고 혹독한 겨울이 길어졌으며 100년 넘게 이어진 가뭄이 땅을 말렸다.
일부 공동체에는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위기였지만 환경에 적응한 공동체도 있었다. 이 시기 세계 곳곳에서 강이나 호수로 옮겨 간 사람이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남긴 건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부근으로 이동한 집단이었다. 이곳에서 태어난 문명이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이 집단은 여러 세대에 걸쳐 운하를 파 밭으로 물을 끌어들이며 강을 다스렸고 그곳에서 거둔 곡물을 저장했다. 쿠르츠게작트는 이를 인류가 벌인 대규모 조직 활동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이 경험이 훨씬 훗날 처음으로 본격적인 도시국가를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됐다는 설명이다.
◇ 도시와 문자의 탄생=빙하호 붕괴 이후 100~200년이 지나자 기후가 안정되고 가뭄도 끝났다. 인류는 다시 새로운 상황을 맞았다. 7,000년 전이 되자 안정적인 식량 공급 덕분에 인구가 늘었고 일부 마을은 놀라울 만큼 커졌다.
메소포타미아 고대 도시 우루크(Uruk)에는 수만 명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을이라면 기억에만 기대 살아갈 수 있지만 도시에서는 그럴 수 없어 사람들을 다스리는 행정이라는 역할이 생겼다. 행정을 맡은 이들은 곡물을 세고 자원을 나눴으며 도시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세금을 걷었다. 이 모든 걸 관리하려고 점토 공이나 점토판에 표시를 새겨 보리와 양의 수를 기록했다. 이 표시가 점차 실제 문자로 바뀌어 갔다.
이와 관련한 중대한 기록이 5,000년 전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발견된 쿠심(Kushim)이라는 말이다. 쿠심은 맥주용 보리를 기록한 점토판에 서명된 글자다. 어떤 조직을 가리킨다는 견해도 있지만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사람 이름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쿠르츠게작트는 여기서 기록에 남지 않은 인류사의 암흑 물질 시대가 끝난다고 정리했다. 쿠심에 대해서는 이것 말고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게 쿠르츠게작트 설명이다. 맥주를 받았을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와 그날 실제로 맥주를 마셨는지 그리고 마셨다면 어떤 맛이었는지 모른다. 지구에 처음 생긴 도시에서 그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도 알 수 없다. 그래도 쿠심이라는 이름은 역사의 암흑 물질 속에 묻혀 잊힌 모든 사람을 대표하는 이름이라고 쿠르츠게작트는 강조했다. 오늘날 문명으로 가는 길을 연 셀 수 없이 많은 삶과 경험, 업적을 상징하는 이름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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