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이크로소프트 수석 과학자였던 고든 벨(Gordon Bell)은 저서인 토탈 리콜(Total Recall)에서 전자기억 혁명을 통해 인간이 망각의 한계를 극복하고 삶을 재구성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실제로 그는 90년대 마이크로소프트 연구소에 근무할 당시 마이라이프비츠(MyLifeBits)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목걸이형 카메라인 센스캠(SenseCam)을 이용해 사진 뿐 아니라 자신이 읽은 책이나 문서, 웹사이트 스크린샷, 주고받은 이메일, 혈압과 심박수 같은 생체 데이터는 물론 자신이 들은 모든 오디오 대화까지 모두 저장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말 그대로 완전한 기억을 미리 실험한 것이다.
이 같은 실험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오미(Omi) 프로젝트는 목걸이 형태로 모든 대화를 24시간 녹음하고 실시간으로 앱에 텍스트로 옮겨주는 AI 웨어러블 디바이스 프로젝트다.
젠스파크가 내놓은 세컨드브레인노트는 적어도 자신이 말하고 듣는 ‘음성’ 부분에 대해선 인간이 지닌 기억력의 한계를 극복하고 망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 현실적 대안이 될 수 있다.

◇ 휴대성은 합격, 단자는 아쉬움=세컨드 브레인(Second Brain)은 말 그대로 2번째 뇌. 뇌를 대신해서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을 저장하고 관리해주는 개인지식관리 시스템(Personal knowledge management)이다. 제품을 보자마자 느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은 휴대하기 좋다는 것. 이 제품은 두께 2.95mm, 무게도 24∼26g 사이에 불과한 그러니까 신용카드 크기다. 지갑에도 쏙 들어갈 정도다. 함께 제공하는 거치대 겸용 보관함에 끼우면 아이폰 같은 스마트폰 뒷면에 맥세이프(MagSafe)로 간편하게 자력으로 부착시킬 수 있다. 부담없이 휴대하다가 어디서나 손쉽게 쓸 수 있다는 얘기다.
본체에는 버튼 하나만 있다. 조작이 직관적이라는 얘기다. 2초 가량 길게 누르면 녹음이 시작되고 도중에 한 번 짧게 누르면 마커가 표시된다. 나중에 중요한 부분만 빠르게 다시 찾아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것. 또 버튼 옆에는 RGB 표시등이 있다. 기기가 작동할 때 상태 표시는 물론 상대방 입장에서 몰래 녹음하는 상황이나 오해를 방지할 수 있다.
세컨드브레인노트는 본체에는 마이크 4개가 위치하고 있으며 AI 빔포밍 기술을 더해 반경 5m 내 오디오를 녹음할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저 공기 중 소리만 녹음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스마트폰 뒷면에 맥세이프로 부착한 상태에서 통화를 하면 내장한 골전도 센서가 스마트폰 자체 내 미세 진동을 감지해 상대방 목소리까지 깔끔하게 통화 내용을 녹음해준다. 녹음이 쉽지 않은 아이폰 사용자 입장에선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대목이다. 통화 녹취 품질 역시 훌륭했다.

내부 용량은 64GB다. 이 정도면 1,000시간에 달하는 음성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하지만 녹음한 파일을 젠스파크 앱과 블루투스나 와이파이로 동기화하면 기기 내부에 있는 원본 오디오 파일은 알아서 삭제하는 자동 용량 확보(Auto-Clear) 기능을 지원해 일부러 용량 관리를 고민할 필요가 없다.
제품이 얇아 배터리가 오래 가지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지만 한 번 충전하면 35시간 연속 녹음을 지원하고 대기 시간은 60일에 달한다. 본체는 알루미늄 합금으로 깔끔하고 견고하다는 인상을 준다. 충전은 아무래도 제품 두께가 너무 얇다 보니 독자 규격 단자를 이용한다.
하드웨어 자체만 먼저 짚어보면 실제로 한 달 간 써본 결과 휴대성과 편의성은 나무랄 데가 없다. 그냥 스마트폰 뒷면에 붙여뒀다가 어디서나 쓰면 그만이다. 거치대 겸용이기 때문에 필요한 곳에선 세워두고 쓸 수도 있다.


다만 버튼을 한 번만 길게 누르면 실행이 되지만 LED 표시창 같은 게 있는 건 아니다 보니 쓰다 보면 실행시킨 줄 알았는데 안 될 때도 간혹 발생한다. 또 앱이 최신 상태로 업데이트가 안 되어 있거나 혹은 간혹 세컨드브레인노트가 오프라인 상태가 될 때도 있어 젠스파크 앱에서 확실하게 녹음 시작 여부를 확인하게 된다.
USB 케이블 단자부는 사실 제품 두께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당장 문제될 건 없지만 전용이다 보니 오랫동안 쓰게 된다면 여분 케이블을 따로 구입할 방법을 제시해주는 게 좋을 듯싶다.
그 밖에 녹음 파일을 클라우드로 저장하는 만큼 보안이나 프라이버시에 대한 우려도 있을 수 있다. 물론 회사 측 소개를 보면 SOC 2 Type II와 ISO/IEC 27001:2022 인증을 받은 만큼 보안 관리 체계는 검증을 받은 셈이다. 하지만 이건 보안 인증일 뿐이다. 녹음 데이터 학습 활용이나 보관 기간까지 보장하는 건 아닌 만큼 개인 저보 처리 방침은 따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

◇ 정리는 탁월, 무료 플랜은 빠듯=자잘한 아쉬움은 있지만 세컨드브레인노트 사용 만족도는 높다. 그냥 녹음만 해두고 전사 버튼을 누르면 젠스파크 앱이나 PC용 브라우저 등에서 로그인하면 AI회의록을 통해 맥락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내용은 물론 음성 파일, 스크립트, 마인드맵을 한꺼번에 확인하고 내려받을 수 있다. 화자가 여러 명일 경우에는 Speaker1, 2 등으로 표시되는데 직접 이름을 입력해서 바꿀 수 있다. 물론 녹음을 시작할 때 화자명을 한번씩 불러주면 간단하게 정리할 수도 있다.
이렇게 축적한 데이터를 이용한 활용법도 제시하고 있다. 젠스파크가 지원하는 젠메일(GenMail)을 이용해 이메일 답장 초안을 만들거나 슬랙, 노션, 구글 워크스페이스 등과 연동해서 다른 콘텐츠를 생성할 수도 있다. 젠스파크가 지원하는 에이전트를 통해 업무 자동화를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물론 젠스파크 측에서 생각하는 세컨드브레인노트의 존재 이유가 사용자 입장에선 한계가 될 수도 있는 만큼 미리 염두에 둘 필요는 있다. 기본 무료 플랜이라면 무료 전사는 매월 300분만 지원한다. 적지 않지만 업무에 활용한다면 생각보다 금세 끝난다. 예를 들어 회의가 보통 1시간은 될 수 있고 미팅도 마찬가지다. 플러스 이상 플랜에선 무제한 AI 전사와 요약을 크레딧 소모 없이 이용할 수 있으니 구입 전에 미리 체크해야 한다. 세컨드브레인노트는 어디까지나 젠스파크 플러스나 프로 같은 유료 플랜 구독을 했을 때 효용성이 높다는 얘기다.
세컨드브레인노트를 한 달간 사용해본 소감을 한마디로 말하려니 드라마 <사랑의 불시착>에 나왔던 대사가 떠오른다. 윤세리(손예진 분)가 표치수(양경원 분)에게 상으로 줬던 샴푸와 린스, 바디워시를 돌려달라고 했을 때 한 말이다. “없을 땐 몰랐지만 써 보니 이젠 이것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고 말았다”. 딱 이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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