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투자 업계에서 여성 벤처캐피탈리스트(VC)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IMM인베스트먼트 김혜진 상무는 10년 전만 해도 여성 심사역을 찾아보기 어려웠고, “여성이 VC에 가고 싶어 하면 말려라. 험하다”는 조언을 들을 정도로 업계의 남성 중심적인 분위기가 강했다고 회상한다. 이런 환경 속에서도 여성 VC들은 자신만의 강점과 철저한 준비를 바탕으로 영역을 넓혀왔다.
서울창업허브 스케일업센터에서 여성 VC 간 네트워크 형성과 교류 활성화를 위한 ‘2026 INVESTOR DAY(여성VC)’가 개최됐다. 주니어부터 시니어, 임원까지 다양한 경력 단계의 여성 VC들이 한자리에 모여 업계에서 겪은 어려움과 고민을 나누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경험과 지혜를 공유했다. SBA 인사이트 토크에서는 IMM인베스트먼트 김혜진 상무와 인비저닝파트너스 차지은 파트너가 참여한 ‘여성 VC의 경쟁력,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세션을 통해 구체적인 생존 전략을 공유했다. 두 패널은 업계에서 마주한 환경을 장벽으로만 여기기보다 자신만의 강점으로 돌파해왔다고 입을 모았다.

김 상무는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방의 성향을 빠르게 파악하고 맞춰가는 눈치와 섬세함이 가장 큰 무기였다”고 강조했다. 투자 기회를 확보하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상황에서 상대방의 성향을 파악하고 세부 사항까지 철저하게 준비한 태도가 신뢰를 얻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김 상무는 낮은 기업가치를 제시했음에도 해외 투자 관련 쟁점을 꼼꼼하게 분석해 간 진정성을 인정받아 스타트업 대표의 신뢰를 얻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대표는 “이런 분과 함께라면 밸류가 조금 낮더라도 같이 일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여성 심사역의 비중이 점차 늘어나면서 업계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2019년 7% 수준이었던 여성 심사역 비율이 15.4%까지 증가하는 등 변화가 나타났다. 패널들은 여성 VC들이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지지하는 ‘느슨하지만 다정한 연대’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과거처럼 남성 선배들을 따라 무리하게 술자리에 참석하거나 불필요하게 에너지를 소모하기보다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각자의 커리어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돕는 문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혜진 상무는 초기 세븐퍼센트 런치클럽 등을 통해 여성 네트워크의 기반을 다졌던 경험을 언급하며 남성 중심적인 환경에서도 여성들끼리 모여 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를 지지하는 문화가 큰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출산과 육아로 인해 마주하는 현실적인 장벽에 대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과거 여성 심사역의 출산휴가 사례조차 드물었던 시절을 거쳐온 패널들은 후배들이 눈치를 보지 않고 충분히 휴식한 뒤 업무에 복귀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고 전했다. 차지은 파트너는 “결혼 여부나 자녀 계획을 미리 걱정해 내 앞에 온 기회를 스스로 제한하거나 축소해서 생각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회의실에서도 뒤쪽에 물러나 앉기보다 의사결정의 주체로서 당당하게 앞자리에 앉아 의견을 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운전대를 직접 잡는 사람과 뒷자리에 앉아 멀미하는 사람의 차이처럼 주도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할수록 일을 능동적으로 이끌고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는 비유다.
이날 대담에서는 항상성도 주요 화두로 다뤄졌다. 새로운 투자 분야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다양한 창업가를 만나야 하는 VC 업계에서는 시장 상황과 업무 강도에 따라 컨디션과 멘탈이 흔들리기 쉽다. 패널들은 이럴 때일수록 자신만의 루틴을 지키며 신체적, 정신적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꾸준한 운동과 수면 관리 등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습관이 장기적으로 업무를 지속하는 기반이 된다는 것이다. 김 상무는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에 집착하기보다는 빡빡한 일정 속에서도 나만의 운동 시간이나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는 유연함과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히 초기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낙관적인 미래를 함께 그려나가는 VC들에게 체력과 멘탈의 항상성은 업무 지속성의 근간”이라고 강조했다.
대담 이후 참가자들은 자유롭게 교류하며 각자의 고민과 경험을 나눴다. 한 참가자는 출산 등으로 커리어가 단절될 수 있다는 고민에 대해 다른 여성 VC들의 의견을 듣고 싶어 행사에 참석했다고 밝혔다. 남궁선 SBA 투자지원팀 팀장은 “주니어부터 시니어, 임원까지 다양한 경력 단계의 여성 VC들이 그동안 겪은 어려움과 고민을 공유하고 서로 응원할 수 있도록 행사를 마련했다”며 “12월까지 주니어 VC와 펀드 관리역 등 투자 업계 관계자를 대상으로 네트워킹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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