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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에 의해 원자나 전자가 불규칙하게 움직이면서 회로 전압이나 전류에는 작은 흔들림이 생긴다. 이런 무작위 흔들림은 열잡음이라고 불리며 일반 컴퓨터에서는 계산을 어지럽히는 원인이 되므로 억제되고 있지만 그 열잡음을 거꾸로 계산에 이용하는 열역학 컴퓨팅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AI나 과학 계산에 필요한 처리를 기존 컴퓨터보다 적은 소비 전력과 발열로 실행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만 아직 소규모 시제품이나 시뮬레이션을 사용해 원리를 검증하는 단계에 있다.

현행 컴퓨터에서는 열잡음에 의해 0과 1이 잘못 뒤바뀌면 계산 결과가 망가지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반도체는 주위의 열에 의한 흔들림보다 훨씬 큰 에너지를 사용해 신호를 확실하게 전환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하지만 신호를 열잡음으로부터 지키려면 많은 전력이 필요하며 소비 전력은 최종적으로 열로 손실된다. 부품을 고밀도로 배치한 프로세서에서는 냉각도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열잡음을 철저히 억제한다는 기존 방침에는 에너지 효율 면에서 한계가 있다.

열역학 컴퓨팅은 이 발상을 역전시킨 것으로 열잡음 영향이 나타날 정도로 작은 에너지로 회로를 작동시켜 열에 의해 생기는 무작위 상태 변화 그 자체를 계산에 이용한다. 흐름을 거슬러 큰 힘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흐름 방향이나 통로를 설계해 목적지로 나아가게 하는 컴퓨터라고 할 수 있다.

에너지 상태를 지형에 비유하면 에너지가 낮은 안정된 상태는 골짜기, 에너지가 높은 불안정한 상태는 산에 해당한다. 열역학 컴퓨팅에서는 비탈 위에 놓인 공이 자연스럽게 낮은 곳으로 굴러가듯 풀고자 하는 문제의 답에 대응하는 상태가 에너지가 가장 낮은 골짜기가 되도록 회로를 설계하고 열에 의한 흔들림을 받으면서 시스템이 그 골짜기로 향하는 과정을 이용한다.

열역학 컴퓨팅에는 크게 나눠 평형형과 비평형형 두 종류가 있다. 평형형은 시스템이 충분히 시간을 들여 안정된 상태로 자리 잡은 뒤 그 상태를 읽어내어 계산 결과로 삼는 유형. 예를 들어 역행렬을 구하고자 하는 행렬 각 성분을 회로 요소 사이 결합 강도로 설정한다. 그러면 열평형에 자리 잡은 회로에서는 열잡음에 의한 전압 흔들림이 얼마나 연동되어 있는지를 측정하기만 하면 그 값이 원래 행렬의 역행렬이 되도록 설계할 수 있다. 일반적인 컴퓨터가 다수 연산을 순서대로 실행하는 대목을 물리 시스템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는 과정에 계산을 맡기는 셈이다.

다만 평형형은 시스템이 평형 상태에 도달하기까지의 시간이 푸는 문제나 회로 구조에 따라 크게 달라져, 언제 답을 얻을 수 있을지 예측하기 어렵다는 과제가 있다. 도중에 다른 골짜기에 빠져들어 올바른 상태로 옮겨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가능성도 있다.

이런 이유로 주목받고 있는 게 시스템이 평형 상태에 도달하기 전의 움직임을 계산에 이용하는 비평형형이다. 비평형형은 최종적인 안정 상태 뿐 아니라 회로의 상태가 시간과 함께 어떻게 변화했는가 하는 궤적에 계산 결과를 담는 구조로 되어 있다.

비평형 상태에 있는 물체는 에너지가 낮은 방향으로 이동하려 하면서도 열잡음에 의해 끊임없이 다른 방향으로 밀린다. 이런 운동은 랑주뱅 동역학으로 나타낼 수 있으며 회로를 충분히 작은 전력으로 작동시키면 전압이나 전류에도 마찬가지의 무작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비평형형에서는 일정 시간이 경과한 시점 상태가 답이 되도록 회로를 조정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평형 상태가 될지 알 수 없는 시스템을 계속 기다릴 필요가 없고 미리 정한 시간에 결과를 읽어낼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열역학 컴퓨터의 실제 기기 개발에 힘쓰는 노멀 컴퓨팅(Normal Computing)은 저항, 콘덴서, 코일을 조합한 RLC 공진 회로를 여러 개 연결한 평형형 시제품을 개발했다. 이 시제품에서는 각각의 회로에 무작위 전기 신호를 주고 회로 사이 결합 강도를 조정해 역행렬을 구하는 처리 등을 실행할 수 있다.

다만 이 시제품은 회로 내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열잡음만으로 작동한 건 아니며 열잡음을 대신하는 무작위 전기 신호를 외부의 난수 생성기로 만들어 이를 회로에 입력하고 있었다. 난수 생성이나 신호의 입력에도 전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시제품 전체가 기존 컴퓨터보다 저전력이었는지까지는 이 실험에서는 확인되지 않았다.

열역학 컴퓨팅을 AI에 응용하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는 열잡음에 의해 상태가 변화하는 회로를 뉴럴 네트워크 뉴런에 빗대 평형 상태를 기다리지 않고 비선형 계산을 실행하는 모델을 제안했다.

일반 뉴럴 네트워크에서는 입력을 단순한 비례 관계가 아니라 곡선적으로 변환하는 비선형성이 중요하다. 선형인 계산만을 몇 단 겹쳐도 전체로서는 1단 선형 계산과 같은 것밖에 표현할 수 없지만 비선형 변환을 더해 이미지 인식 등에 필요한 복잡한 함수를 근사할 수 있다.

화이트램 등 연구에서는 실물 회로가 아니라 컴퓨터 시뮬레이션상에서 열역학 뉴럴 네트워크가 재현됐다. 나아가 유전 알고리즘을 사용해 회로 사이 결합이나 입력 가중치를 조정하고 지정된 시각에 목표로 하는 비선형 함수를 출력하도록 학습시켰다.

유전 알고리즘은 성능이 좋은 설정을 남기고 그 설정에 조금씩 무작위 변화를 더하면서 더 나은 걸 찾는 기법이다. 열잡음을 포함하는 회로에서는 같은 조건이라도 답이 매번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에 일반적인 뉴럴 네트워크에서 사용되는 학습법과는 다른 탐색형 방법이 채용됐다.

이 시뮬레이션에서는 시스템이 열평형에 도달하지 않았더라도 미리 정한 관측 시각에 비선형 계산 결과를 낼 수 있음이 제시됐다. 이로써 열역학 컴퓨팅의 용도는 역행렬과 같은 선형대수 처리에서 뉴럴 네트워크가 다루는 것 같은 폭넓은 비선형 계산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열역학 컴퓨터는 열잡음을 이용해 동작하기 때문에 같은 조건에서 계산하더라도 얻어지는 결과는 매번 조금씩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신뢰할 수 있는 결과를 얻으려면 같은 계산을 반복해 여러 측정 결과를 평균할 필요가 있다. 필요한 시행 횟수가 늘어나면 그만큼 처리 시간이나 소비 전력도 늘어나기 때문에 이론상 기대되는 저전력성이 실제 장치에서도 얻어질지 여부는 앞으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

또 현재 제시되어 있는 성과 대부분은 소규모 회로나 디지털 시뮬레이션에 의한 것이다. 회로를 대규모화했을 때에도 안정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지, 자연의 열잡음만으로 충분한 속도를 얻을 수 있는지, 일반 GPU나 AI용 칩보다 정말로 효율이 좋은지와 같은 점은 아직 실증되지 않았다.

연구자는 RLC 회로에 비선형 소자를 더한 구성이나 초전도 회로 등을 사용하면 열역학 뉴럴 네트워크를 구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밝히고 있다. 다만 제안된 비선형 모델은 현시점에서는 시뮬레이션이며 실제 하드웨어에 의한 검증이 앞으로의 과제다.

열역학 컴퓨팅은 일반 컴퓨터를 그대로 대체하는 만능 기술이라기보다 확률적인 계산이나 AI, 최적화, 과학 시뮬레이션 등에 적합한 전용 계산 장치로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또 세포가 적은 에너지로 정보를 처리하는 구조를 이해하는 실마리가 된다는 견해도 있다. 다만 이 분야는 아직 초기 단계이며 실제 장치를 대규모화할 수 있는지, 그리고 기존 컴퓨터를 능가하는 저전력성을 증명할 수 있는지가 열역학 컴퓨팅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할 수 있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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