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는 일을 열심히 하고 서비스가 좋으면 고객과 파트너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아무리 상품이나 서비스가 좋아도 네트워킹이 부족하면 고객을 얻기 어렵습니다.”
미국의 AI 스타트업 미리엘 AI(Miriel AI)의 알리산 일디잘프(Alican Yildizalp) CEO는 한국에서 직접 사업을 하며 느낀 차이를 이렇게 설명했다. 재미있는 점은 미리엘 AI가 한국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기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알리산 CEO는 몇 년 전 한국으로 이주한 뒤 이곳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9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글로벌 스타트업 축제 ‘Try Everything 2026’에서 만난 글로벌 스타트업들은 저마다 다른 이유로 한국을 찾았다. 한국 시장 진출 가능성을 확인하려는 기업부터 K팝과 한국 문화의 글로벌 영향력에 주목한 기업, 투자자와 새로운 사업 파트너를 찾는 기업까지 다양했다. 이들이 직접 경험하거나 바라본 한국 시장은 어떤 모습일까.

미리엘 AI는 생후 4개월부터 6세까지 영유아와 어린이를 위한 맞춤형 AI 영양 관리 플랫폼이다. 연령과 식성, 알레르기, 성장 속도 등을 입력하면 AI가 개인별 식단을 계획해준다. 아이가 먹은 음식을 직접 기록하거나 사진을 찍어 올리면 부족한 영양소를 분석하고 소아과 영양 지침을 기반으로 영양 코칭도 제공한다. 챗봇이나 음성 대화를 통해 AI와 소통할 수 있는 것도 특징이다. 현재 미국과 한국, 터키 등 여러 국가에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지만 각 국가에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알리산 CEO는 “나라마다 식문화가 다르고 영양 기준도 다르기 때문에 AI가 제시하는 조언 역시 달라질 수 있다”며 “현재 서비스는 국가에 따라 완벽히 현지화돼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의 사업은 그에게 또 다른 배움이었다. 서비스 자체의 경쟁력만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연결이 중요하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 시장이 쉽지 않다. 미리엘 AI는 현재 한국보다 미국과 터키에서 앱에 대한 관심이 더 높다고 설명했다. 출생률이 낮은 한국에서는 다른 국가보다 더 많은 마케팅 노력이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소비자의 불안을 자극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현재 4명 규모인 미리엘 AI는 아직 작은 스타트업이지만 앞으로 인력을 늘리고 사업을 확장해나갈 계획이다. 알리산 CEO에게는 이번이 세 번째 창업이기도 하다.

일본의 푸드·바이오 스타트업 모러스(Morus Inc.)에게 이번 행사는 한국 시장을 직접 테스트하는 자리다. 모러스는 누에를 활용한 고기능성 건강식품과 단백질 원료를 개발한다. 대표적인 원료인 모실크(MorSilk)는 누에고치 유래 단백질을 활용한 제품이다. 회사는 이 원료를 기반으로 식품 브랜드 카이코(KAIKO)를 운영하고 있다. 현장에서는 일본 프리미엄 말차에 모실크를 배합한 ‘카이코 실크말차’를 선보였다. 물이나 우유에 간편하게 타 먹는 스틱형 파우더 음료로, 말차와 유사한 향과 맛, 색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현재 싱가포르를 포함한 동남아시아 국가가 주요 시장이지만 한국에서는 아직 제품이 정식 출시되지 않았다. 타쿠 미츠보리(Taku Mitsubori) 매니저는 “이번 행사를 통해 잠재적인 투자자와 파트너사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시장에 모루스라는 기업과 제품을 알리고 한국 진출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한국 소비자들의 반응을 확인하는 것도 이번 방한의 중요한 목적이다. 미츠보리는 “누에를 활용했다는 점에서 일반 소비자들이 약간의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며 “일반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계속 테스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모러스는 앞으로 누에를 단순한 식품 원료가 아니라 지속가능한 대체 단백질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사업 영역을 넓혀갈 계획이다.

인도의 핀테크 스타트업 블랙플레임(Blackflame)은 한국 시장을 첫 타깃 시장으로 보고있다. 회사가 준비 중인 서비스는 전통적인 벤처캐피탈 투자 방식을 개인 단위로 확장한 모델이다. 일반 이용자가 SNS에서 성장 가능성이 있는 인플루언서에게 투자하고 이후 인플루언서의 성장에 따라 수익을 나누는 방식이다. 바룬 카푸르(Varun Kapoor) CEO는 자신의 서비스를 “모두가 모두에게 투자할 수 있는 세계 최초의 소셜미디어 주식교환 서비스(Social Stock Exchange)”라고 소개했다. 현재 베타 테스트를 진행 중인 블랙플레임이 이번 행사에서 찾고 있는 것은 서비스 출시를 함께할 파트너다. 그가 첫 시장으로 한국에 주목한 이유도 독특하다.
카푸르 CEO는 페이스북의 초기 성장 전략을 예로 들었다. 페이스북이 처음부터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대학생이라는 명확한 집단에 집중하면서 성장 기반을 만들었던 것처럼 블랙플레임도 특정 시장, 한국을 먼저 공략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는 “현재 전 세계에서 K팝을 주목하고 있다”며 “한국의 문화와 인플루언서들은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전 세계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블랙플레임이 바라보는 한국은 단순히 한 국가의 시장이 아니다. K팝과 K콘텐츠를 기반으로 전 세계와 연결된 인플루언서 생태계 자체가 사업 기회라는 것이다.

핀란드의 배터리 스타트업 브로드빗 배터리스(Broadbit Batteries)는 투자자와 사업 파트너를 찾기 위해 서울을 찾았다. 브로드빗 배터리스는 리튬을 대체할 수 있는 저비용·고안전성 나트륨 기반 배터리 기술을 개발하는 헬싱키 소재 스타트업이다. 데이비드 브라운(David Brown) CEO가 소개한 핵심 기술은 식탁용 소금에서도 얻을 수 있는 나트륨을 활용한 ‘나트륨-솔트 배터리’다. 일반적인 나트륨이온 배터리의 인터칼레이션 방식과는 구별되는 독자적인 화학 구조를 기반으로 하며 비인화성 무기 전해질을 사용해 완전 방전 상태에서도 안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회사 측 설명이다. 현재 전 세계에서 약 90건의 특허를 출원했고 25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공공·민간 자금을 합쳐 약 750만 유로의 투자도 유치했다. 데이비드 CEO는 “이번 행사를 통해 투자자나 파트너십을 맺을 다른 기관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이 여섯 번째 창업이라는 그는 “CEO의 삶은 정말 힘들고 하루하루가 예측 불가능 하지만 모험을 즐기고 불확실성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창업을 꼭 추천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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