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말 글로벌 스타트업 투자 시장은 인공지능(AI)과 딥테크(Deep Tech) 분야로 자금이 쏠리는 현상이 더 뚜렷해졌다. 미국에서는 AI 스타트업이 역대급 투자금을 유치하며 시장을 주도했고 중국은 홍콩 증시를 통한 자금 조달로 맞불을 놨다. 여기에 상용화 가능성이 확인된 핵융합 에너지 분야가 새로운 빅머니 투자처로 급부상했다.
◇ 美 AI 스타트업, 연간 1,500억 달러 조달=2025년은 미국 AI 스타트업 역사상 가장 뜨거운 한 해로 기록됐다. 지난 한 해 동안 미국 기반 AI 스타트업이 조달한 자금은 무려 1,500억 달러에 달하며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런 자금 쏠림 현상은 오픈AI(OpenAI)와 앤스로픽(Anthropic) 같은 거대 언어 모델(LLM) 개발사가 주도했다. 투자자는 생성형 AI가 헬스케어부터 금융에 이르기까지 산업 전반을 재편할 것이라는 확신 아래 천문학적인 자금을 베팅했다.
하지만 2026년 기업용(B2B) AI 시장은 ‘옥석 가리기’가 본격화될 전망. 벤처캐피털(VC) 업계는 기업이 AI 예산을 늘리겠지만 지출 대상을 소수의 검증된 공급업체로 압축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데이터브릭스 벤처스 앤드류 퍼거슨 부사장은 기업이 실험 단계를 끝내고 실질적인 성과를 낸 기술에 자금을 집중할 것이라며 시장 통합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독자 데이터나 기술 장벽(Moat)을 갖추지 못한 AI 스타트업 다수는 자금난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졌다.
◇ 中 AI 기업 홍콩 상륙 작전‧반도체 굴기=미국의 대중국 기술 제재 속에서도 중국 테크 기업은 홍콩 증시(IPO)를 우회로 삼아 대규모 자금 조달에 나섰다. 대표적인 중국 생성형 AI 유니콘인 지푸 AI(Zhipu AI)는 홍콩 IPO를 통해 5억 6,000만 달러 규모 주식 매각을 시작했다. 지푸 AI는 기업가치 66억 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2026년에는 범용인공지능(AGI)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다.

또 다른 중국 AI 유니콘 문샷 AI(Moonshot AI)는 비상장 투자를 선택했다. 알리바바와 텐센트 등이 참여한 시리즈 C 라운드에서 5억 달러를 유치하며 기업가치를 43억 달러로 끌어올렸다. 문샷 AI가 보유한 키미(Kimi) 모델은 최근 일부 벤치마크에서 오픈AI의 GPT-5를 능가하는 성능을 보여 주목받았다.

하드웨어와 바이오 분야 약진도 두드러졌다. 중국 AI 칩 설계 기업 비런 테크놀로지(Biren Technology)는 홍콩 증시 상장 첫날 주가가 119% 폭등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이는 엔비디아 빈자리를 노리는 중국 내 GPU 수요와 정부의 국산화 지원 정책이 맞물린 결과로 풀이된다. AI 신약 개발 기업인 인실리코 메디슨(Insilico Medicine) 역시 2억 9,300만 달러를 조달하며 홍콩 증시 AI 바이오 상장 1호 기록을 세웠다.
◇ 핵융합 스타트업에도 조 단위 투자 몰렸다=그동안 먼 미래의 기술로만 여겨졌던 핵융합 발전이 상용화 단계에 진입했다는 기대감과 함께 투자금의 블랙홀로 떠올랐다. 2022년 미국 에너지부의 점화(Ignition) 성공 이후 고성능 반도체와 AI 기술이 결합하며 상용로 설계가 가속화된 덕분.

가장 눈에 띄는 곳은 퍼시픽 퓨전(Pacific Fusion)이다. 이들은 시리즈 A 단계에서만 무려 9억 달러라는 기록적인 자금을 확보했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에릭 랜더가 CEO를 맡은 이 기업은 전자기 펄스를 이용한 관성 가둠 방식을 시도한다.
빌 게이츠가 투자한 커먼웰스 퓨전 시스템즈(CFS)는 최근 8억 6,300만 달러를 추가 유치하며 누적 투자액 30억 달러에 육박했다. CFS는 2026~2027년 사이 첫 상업용 수준 전력 생산 시설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전력 공급 계약을 체결한 ‘헬리온(Helion)’ 역시 2028년 상용화를 목표로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특이한 점은 ‘TAE 테크놀로지스’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디어 그룹(TMTG)과 합병을 발표하며 우회 상장을 택했다는 것. 합병 회사 가치는 6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 대학 스핀아웃 기업이 주도한 유럽 딥테크 생태계=유럽에서는 대학 연구실에서 출발한 스핀아웃(Spinout) 기업이 딥테크 생태계를 주도하고 있다. 2025년 보고서에 따르면 유럽 내 76개 스핀아웃 기업이 기업가치 10억 달러 또는 매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 아이스아이(Iceye), IQM 같은 유니콘 기업이 등장하면서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PSV 하프늄(PSV Hafnium) 등 신규 펀드도 잇따라 결성되고 있다. 유럽 딥테크 스핀아웃은 2025년에만 약 91억 달러를 조달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후기 단계 투자금 절반 가까이를 미국 자본에 의존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한편 핀테크 분야에서는 인도 나이트 핀테크(Knight FinTech)가 엑셀(Accel) 주도로 2,360만 달러 규모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은행과 대출 기관을 위한 인프라를 제공하는 이 기업은 AI 기반의 리스크 관리 및 채권 회수 시스템 고도화에 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그 밖에도 이번 주에는 기술 업계 판도를 흔들 빅딜도 마무리됐다. AI 칩 제왕 엔비디아가 재정난을 겪던 인텔 지분 50억 달러어치 인수를 마무리한 것. 지난 9월 발표된 이 계약 이행으로 엔비디아는 인텔 주요 주주가 되었으며, 이는 반도체 산업 내 주도권이 완전히 AI 중심으로 재편됐다는 걸 상징하는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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