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2년 11월 30일 샌프란시스코의 한 스타트업이 회사 블로그에 짧은 글 하나를 올렸다. “챗GPT(ChatGPT)라는 대화형 모델을 리서치 프리뷰로 공개합니다.” 그 뒤에 벌어진 일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세상은 이전과 전혀 다르게 변했다. 생성형 AI는 순식간에 생각하는 방식과 일하는 방식을 바꿔놓았고, 챗GPT와 제미나이, 클로드와 퍼플렉시티는 어느새 일상 속 도구가 됐다. 이제 인간은 자신보다 뛰어난 지능에 대한 공포와 그 지능을 손쉽게 비서로 부린다는 편리함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경제미디어 더코어(The Core) 김경달 대표가 펴낸 <AI 인물 열전>은 바로 그 변화를 만들어낸 사람들 이야기다. 모두 4권으로 기획된 이 시리즈는 AI 시대를 ‘만들고, 키우고, 지키고, 흔드는’ 이들의 서사를 통해 AI 태동과 성장, 사업과 비전,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도전을 하나의 흐름으로 풀어낸다. 그 첫 권인 〈AI의 토대를 놓은 사람들〉은 신경망이라는 아이디어를 수십 년간 외롭게 지켜내며 현대 AI의 학문적 뼈대를 세운 여섯 연구자를 다룬다. 제프리 힌턴, 얀 르쿤, 요슈아 벤지오, 앤드루 응, 페이페이 리, 그리고 위르겐 슈미트후버가 그 주인공.
이들의 출발점은 놀랄 만큼 닮았다. AI와 신경망이라는 단어가 비웃음의 대상이던 시절, 정부 연구비가 끊기고 논문이 거절되고 동료가 등을 돌리던 때에도 이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변방의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이들이 반세기를 지나 도착한 자리는 제각각이다. 뇌처럼 작동하는 기계를 만들겠다는 신념을 지켜낸 힌턴은 노벨상 수상자이자 동시에 가장 강력한 경고자가 됐다. 은행 수표를 읽어낸 르쿤의 신경망은 조용히 세상 속으로 침투했고 벤지오가 지핀 워드 임베딩(Word Embedding)의 불꽃은 오늘날 모든 거대 언어 모델의 뿌리가 됐다.
책은 여섯 인물이 한 상반된 선택을 선명하게 대비시킨다. 힌턴이 자신이 만든 불을 두려워하는 경고자가 됐다면 르쿤은 그 불을 더 많은 사람의 손에 쥐여주려 오픈 소스의 길을 달린다. 벤지오는 그 사이에서 소화기를 발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앤드루 응은 AI는 새로운 전기(電氣)라며 지식의 대중화를 이끌었고 페이페이 리는 이미지 1,400만 장으로 기계의 눈을 뜨게 했으며 슈미트후버는 기계에 기억을 심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여섯 목소리를 하나로 봉합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힌턴과 르쿤은 AI 위험론을 놓고 공개적으로 대립한다. 벨 연구소에서 같은 꿈을 꾸었던 르쿤과 벤지오는 30년 만에 오픈 소스와 안전을 두고 갈라선다. 스승과 제자, 동료와 경쟁자로 얽힌 이들의 관계는 그 자체로 AI 시대가 던지는 가장 큰 질문을 상징한다. 기술의 미래를 낙관할 것인가, 두려워할 것인가. 저자는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는 대신, 어긋나는 목소리를 한자리에 놓고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도록 한다.
책은 기술 용어를 몰라도 읽어나갈 수 있도록 인물의 선택과 갈등, 우정과 결별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본문 곳곳에는 결정적 장면들이 생생하게 담겼다. GPU 병렬 연산 능력을 딥러닝에 접목한 힌턴 교수팀의 알렉스넷 모델이 이미지 분류 오류율 15.3%를 기록하며 2위(26.2%)를 11%포인트 차로 압도한 순간, 수십 년간 신경망을 외면해온 학계는 하룻밤 사이에 방향을 틀었다. 규칙 기반 AI와 딥러닝의 근본적 격차가 처음으로 수치로 또렷하게 드러난 이 장면은 힌턴이 25년을 인내한 끝에 찾아온 극적인 전환점이었다. “두려워해야 할 건 AI 자체가 아니라 AI를 독점하는 거대 기업”이라는 르쿤의 일갈, 800페이지짜리 교과서 〈딥러닝〉을 온라인에 무료 공개하며 지식은 특권이 아니라고 선언한 벤지오의 고집, 그리고 신경망이 처음으로 기억을 갖게 된 순간을 설명하는 슈미트후버의 대목까지 인물의 신념이 곧 기술의 역사가 되는 순간이 이어진다.
저자는 미디어와 인터넷 비즈니스, AI의 접점에서 오래 일해온 전문가답게 복잡한 기술사를 일반 독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풀어냈다. 동아일보 기자와 네이버 등 인터넷 포털 전략기획을 거쳐 현재 구독 기반 경제미디어 더코어를 이끌고 있는 그는 고려대 미디어대학원에서 AI와 저널리즘을 강의하는 겸임교수이기도 하다. 그는 여섯 인물의 논문과 인터뷰, 강연을 촘촘히 교차시키면서도 이야기의 속도를 잃지 않는다.
“기술의 역사는 결국 사람의 역사다.” 나보다 더 똑똑한 AI에 사람들은 감탄하지만 사실 그 모델은 코드로 짜인 프로그램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코드를 완성한 사람의 신념과 고집, 외로움과 야심 없이는 어떤 혁명도 일어나지 않았다. AI가 어디로 향하는지 궁금한 독자, 뉴스 속 이름들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알고 싶은 독자에게 이 책은 AI 시대를 이해하는 가장 인간적인 출발점이 되어줄 것이다. 토대는 놓였다. 다음 세 권은 그 위에 세워질 시장과 안전망, 그리고 판을 흔드는 이들의 이야기로 이어진다.
- 지은이_김경달
- 가격_13,000원
- 출간일_2026년 7월 8일
- 판형_133*210mm(본문)
- 페이지_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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