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렇게나 놓인 접시를 로봇팔이 하나씩 집어 가지런히 정리한다. 접시의 크기도, 놓인 위치도 제각각이지만 로봇은 스스로 상황을 파악해 작업을 이어간다. 카메라 앞에서 팔을 움직이자 이번에는 로봇이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한다. 화면 속 기술로만 접하던 피지컬 AI를 직접 움직여보는 순간이었다.
지난 9일부터 10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글로벌 스타트업 축제 트라이 에브리싱2026이 열렸다. 올해 행사는 ‘AI Changes Everything, Now Try Everything’을 주제로 국내외 스타트업과 투자자, 대기업 등이 한자리에 모여 글로벌 컨퍼런스와 IR 피칭, 1:1 밋업, 기술 전시 등을 진행했다.
행사장 한편에는 스타트업의 기술을 관람객이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체험형 전시 부스도 마련됐다. 로봇을 움직이고, AI가 추천한 향을 맡아보고, 웨어러블 로봇을 직접 착용하는 등 설명만으로는 쉽게 와닿지 않는 기술을 몸으로 경험할 수 있다.

로보틱스 기업 모토마인드(MOTOMIND) 부스에서는 로봇이 현실에서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모토마인드는 로봇팔과 양팔 휴머노이드 BELLO를 비롯해 하드웨어와 제어 소프트웨어 등을 자체 개발하고 있는 기업이다.
모토마인드 부스에서는 로봇팔이 무작위로 놓인 접시를 스스로 정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접시의 위치가 조금씩 달라져도 카메라를 통해 주변 상황을 빠르게 인식한 뒤 다시 움직였다. 사람의 동작을 로봇이 따라 하는 체험도 마련됐다. 카메라 앞에서 몸을 움직이면 로봇이 이를 인식해 비슷한 동작을 수행하는 방식이다. 직접 체험해보니 복잡한 조작 장치를 다루지 않고도 사람의 움직임을 통해 로봇을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띄었다.
모토마인드는 로봇팔과 휴머노이드의 하드웨어부터 소프트웨어까지 직접 개발하는 로보틱스 기업이다. 이번 행사에서는 인터넷 연결만으로 피지컬 AI를 테스트할 수 있는 클라우드 기반 VLA(Vision-Language-Action) 서비스도 소개했다.
엄기영 모토마인드의 대표이사는 “고성능 GPU가 없어도 인터넷에 연결하면 서버를 통해 피지컬 AI를 테스트할 수 있도록 한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휴머노이드의 경우 사람의 동작을 따라 하면서 향후 산업현장에서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등의 작업에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번 전시의 목적에는 기술을 대중에게 친숙하게 만드는 것도 포함됐다. 엄기영 대표이사는 “투자사와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반 사람들이 ‘로봇이 정말 세상에서 쓰일 수 있겠구나’라고 느끼는 문화를 만들어가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로봇팔은 실제 납품이 진행되고 있으며, 휴머노이드 역시 올해 말 출시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실제 산업현장에서 휴머노이드가 쓰임이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대학생 때 창업을 시작했다는 그는 예비 창업가들에게도 응원의 말을 건넸다. “저도 포항공대를 자퇴하고 대학생 때 창업을 했다”며 “꿈과 이루고자 하는 것이 명확하다면 창업이라는 길은 열려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부스에서는 카메라 앞에 선 관람객들의 긴 줄이 눈에 띄었다. 촬영을 마친 고등학생들은 우주복이나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 합성된 자신의 사진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아폭(APOC, A Piece of Content) 부스에서는 XR 콘텐츠 제작 서비스를 활용해 내가 생각하는 미래 서울을 주제로 한 AI 필터 체험을 준비했다.
관람객이 네 가지 선택지 중 자신이 생각하는 미래의 모습을 고르면 각 답변에 맞는 콘셉트의 AI 필터가 적용된 사진을 제공하는 방식이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AI와 XR 기술을 사진 촬영이라는 익숙한 방식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아폭은 웹 브라우저에서 별도의 코딩 없이 XR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는 서비스다. 클릭과 드래그앤드롭을 이용해 2D·3D·AR·VR 등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 아폭 관계자는 “원래 박물관이나 기관의 콘텐츠를 개발하는 회사인데 이번엔 우리가 직접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운영해보자는 생각에서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 해외 진출을 계획하고 있어 해외 바이어들과 연결되기 위해 참여했다”며 행사 기간 캐나다와 아프리카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참가자들이 부스를 방문했다고 전했다. 향후에는 다국어 지원과 해외 API 연동을 확대하고 AI를 더욱 적극적으로 접목해 콘텐츠 제작에 드는 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서비스를 발전시킬 계획이다.
눈과 귀를 넘어 이번에는 ‘후각’을 디지털 기술과 연결한 기업도 만날 수 있었다. 디지털센트 부스에서는 몇 가지 질문에 답하면 AI가 개인에게 어울리는 향을 추천해주는 향수 시향·블렌딩 키오스크를 만나볼 수 있었다. 사용자는 성별과 나이부터 좋아하는 향, 계절, MBTI, 패션, 향수를 사용하는 목적 등을 선택한다. 입력된 정보를 바탕으로 AI가 이용자의 취향을 분석하고 어울리는 향료를 제안한다.

AI가 향을 추천하면 사용자가 직접 향을 맡아본 뒤 자신의 취향에 맞게 다시 조정할 수 있다. 추천받은 향을 직접 맡은 뒤 원하는 향료의 비율을 조절할 수 있다. “우디 향을 조금 더 진하게” 혹은 “조금 더 달콤하게”와 같이 취향에 따라 직접 조정하면 AI가 이를 바탕으로 최종 배합 비율을 계산한다. 단순히 AI의 추천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직접 향을 확인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 자신만의 향을 완성하는 방식이다.
이해룡 디지털센트 대표이사는 “저희는 향수를 판매하는 회사라기보다 사람의 취향을 향수로 만들어주는 기계를 개발하는 회사”라고 소개했다.완성된 향의 정보는 디지털 데이터로 저장할 수 있고 QR코드를 이용해 다른 사람과 공유하는 것도 가능하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콘텐츠에 익숙한 상황에서 ‘향’이라는 감각까지 디지털화한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이 대표는 시각과 청각은 이미 수많은 디지털 콘텐츠와 기기를 통해 구현되고 있지만 후각 분야의 디지털 기술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에서 사업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향후 중동과 아시아 시장 진출을 목표로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이번 행사 역시 국내외 투자자와 사업 관계자들에게 아직 생소한 ‘디지털 후각’ 기술을 소개하고 해외 사업 기회를 찾기 위해 참여했다고 밝혔다.

현대자동차그룹 로보틱스랩 부스에서는 로봇을 입어보는 경험도 가능했다. 웨어러블 로봇 엑스블 숄더(X-ble Shoulder)를 직접 착용하고 팔을 들어 올려봤다. 평범한 조끼처럼 보이는 엑스블 숄더는 착용했을 때 특별한 무게감이나 불편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팔을 위로 들어 올리자 아래에서 누군가 팔을 받쳐주는 듯한 힘이 느껴졌다. 물건을 든 상태에서 팔을 반복해서 들어보니 장비를 착용하지 않았을 때와의 차이가 더욱 분명했다.
엑스블 숄더는 자동차 생산라인이나 과수원 등 지속적으로 팔을 머리 위로 든 상태에서 활동해야 하는 작업자의 어깨 부담을 줄이기 위해 개발된 산업용 웨어러블 로봇이다. 작업자가 오랜 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해야 하는 환경에서 팔과 어깨를 지지해 신체 부담을 줄이는 역할을 한다. 별도의 배터리를 사용하지 않는 무동력 방식이며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작업자의 어깨 관절 부담을 최대 60% 줄일 수 있다.
직접 착용해 보니 웨어러블 로봇이 거대한 기계 대신 사람이 일상적으로 착용하는 장비의 형태로 노동 현장에 들어올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로봇 기술이 생산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작업자의 노동환경을 개선하는 방향으로도 활용될 수 있음을 직접 체감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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