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활한 우주에는 인류 이외에 지구 외 문명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인류는 지적생명체는커녕 미생물조차 찾을 수 없다. 페로미의 패러독스로 불리는 이 의문에 대해선 인류가 지적이라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 태양계에 일부러 방문할 가치가 없기 때문, 지적 생명체는 거의 태어나지 않기 때문 등 다양한 가설이 있다. 이런 가설 중 인류가 우연히 태어나 차례로 지구 외 문명이 은하에 나오는 건 아니라는 가설도 있다.
지금까지 많은 행성이 관측되고 있지만 생명이 있는 행성이나 지구 외 문명 흔적 발견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 왜 진전이 없을까. 그 이유 중 하나는 단세포 생물이 우주로 진출하는데 얼마나 걸리느냐다. 생명이 없는 물체로부터 탄생한 단세포 생물은 서로 협력해 다세포 생물이 되어 큰 뇌를 갖는 복잡한 생물로 진화한다. 이어 진화 끝에 우주로 진출하는 문명으로 발전한다.
이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잘 알지 못한다. 지구의 경우 단세포 생물에서 다세포 생물이 되기까지 20억년 그리고 인류 조상이 출현하기까지 추가로 20억년이 걸렸다. 다른 행성에서 문명이 발달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등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다. 다시 말해 인류 문명이 은하에서 첫 기술 문명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의문은 왜 이 시기에 인류가 태어났는지다. 우주는 이미 138억년을 거쳤지만 인류보다 앞서 기술 문명이 탄생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초기 우주에선 끊임없이 별이 폭발하고 은하가 충돌을 반복하고 초거대 블랙홀이 생명을 여러 차례 멸종시키기에 충분한 방사선량을 토해내고 있었다. 지구상 생명을 키워온 태양은 이런 죽음의 쇼 끝에 탄생했다.
우주가 지금까지 생명에 있어 살기 쉬운 시기였던 적이 없기 때문에 인류는 절호의 시기에 태어난 셈이다. 그렇더라도 앞으로는 사정이 조금 바뀔 수 있다. 앞으로 10억년이 지나면 태양이 팽창해 지구를 삼켜버리기 때문이다. 우주에서 태양은 단명이다. 예를 들어 은하계 항성 중 일반적인 붉은 왜성은 거주 가능한 행성 환경을 수십조년 유지할 수 있다. 수명이 긴 항성을 주회하는 행성에 문명이 탄생할 확률은 과거보다 미래에 훨씬 높아진다. 문명이 1조년 이상 긴 시간 속에서 무작위로 출현하는 것보다 138억년 밖에 지나지 않은 상태에서 기술 문명이 탄생할 확률은 낮기 때문이다. 반대로 이런 환경 행성에선 문명이 탄생할 가능성이 있다.
만일 지구 외 문명이 우주로 진출해도 선발 문명이 은하 대부분을 지배해버린다면 후발 문명은 세력을 확대할 여지가 사라진다. 하지만 인류는 아직 다른 외계 문명에 위협받지 않는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우주인은 아직 지구에 오지 않았을까. 인류는 왕성한 확장주의로 전 세계로 퍼져 지구상 토지를 차지해왔다. 앞으로도 이 상태로 발전하면 곧 우주로 나서 다른 행성을 테라포밍해나갈 수도 있다.
이런 문명은 활동 시그널을 우주에 발하기 때문에 시끄러운 문명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런 문명 활동은 곧 다른 문명이 알게 된다. 라우드 문명 존재는 그 결과로 치열한 환경 파괴를 초래한다. 지금 인류가 그렇듯 본격적으로 우주로 진출하지 않은 조용한 문명이 은하 어딘가에 존재할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적어도 라우드 문명은 아직 은하수 은하에는 없다.
이런 상태라면 은하게에 존재하는 문명은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조용한 채로 여유롭게 자신의 행성을 유지할지 혹은 누군가가 오기 전에 가능하면 넓은 은하 영역을 지배할 것인지다. 다른 문명과의 만남은 새로운 테두리를 만들지만 이게 반드시 전쟁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다른 은하 제국에 완전히 포위되어 영원히 은하 변경으로 쫓겨난 채 끝날 가능성은 있다. 따라서 은하 내 성숙한 문명과 같은 테이블에 앉고 싶다면 행동을 취하는 게 선결일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선발조라면 믿을 수 없는 기회가 수천, 수백만 행성에 있으며 비전과 꿈대로 형성해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