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제주도에서 ‘소리’를 주제로 창업을 했지만 이전에는 환경보전협회에서 교사용 지도서를 만드는 일을 주로 해왔다. 항상 첫 장에 “생태감수성”이 환경 교육의 핵심이라는 내용이 들어가곤 했다. 그 말을 바라보다 보면, 서울 사무실에 갇혀서 인터넷으로 찾은 정보로 교육안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환경교육을 전달하는 내 모습에 괴리감이 들었다.
그렇게 얼마 못 가 사직서를 제출했다. 자연을 스스로 느끼게 하는 환경교육이 하고싶었다. 내가 사는 지역부터 바꿔야하겠다 싶었다. 회색 콘크리트 건물 숲인 서울을 떠나, 가장 좋아하는 지역 ‘제주도’로 삶의 터전부터 옮겼다. ‘포터블 녹음기’는 이때부터 나와 함께였다.
자연을 말과 글로 설명하면 ‘이해’로 그치지만, 자연을 소리로 들으면 좋다라는 ‘감정’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녹음기를 들고 무턱대로 자연의 소리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제대로 된 소리를 만나는 것이 쉽지 않던 중, 운이 좋게도 제주 올레 탐사팀으로 1년간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누구보다 제주를 두 발로 많이 누비며, 일하는 틈틈이 소리풍경이 좋은 장소를 기록했다.
취미 수준 같던 일이었지만, 제주더큰내일센터라는 창업보육기관에 입소하게 되면서 ‘업’으로 바뀌어갔다. 3개월간의 기초교육과 언더독스의 창업코칭을 받으며 창업을 본격화했다. ‘자연의 소리에 동조되는 일상을 만들자’는 미션을 품은 슬리핑라이언이 탄생한 것이다.
제주도는 생물권보전지역, 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세계7대경관이 있어, 생태적, 지질적으로 희소한 가치로 가득한 ’화산섬‘이다. 이러한 화산섬은 ’사운드스케이프(소리풍경)‘을 핵심콘텐츠로 삼는 우리에게 산, 오름, 초원, 동굴, 해안, 습지, 부속섬 등이 모두 있어 ‘작은 지구’와 같다.
이런 제주의 소리가 쌓여갈 때, 8년 만에 첫 아이가 생겼다. 신생아 시절 방안에만 있는 아이에게 녹음해두었던 파도소리나 빗소리를 들려주었다. 수면에도 효과가 있었고, 신체와 정서가 급성장하는 시기에 자연에 대한 경험을 청각적으로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탄생한 ‘베베슬립’은 2020년 10월 런칭 이후 2년 연속 구글 피처드에 선정되었다. 현재는 전세계 177개국, 3만명이 넘는 아이들에게 매일밤 소리풍경으로 제주를 전달하고 있다.
베베슬립이 각 가정에 제주의 소리를 전달했다면, 2022년부터는 제주를 찾는 사람들에게 자연의 소리에 집중할 수 있는 체험프로그램 ‘사운드워킹’을 개발하여 운영 중이다. 슬리핑라이언이 자연의 소리를 담을 때 사용하는 장비를 최소한의 세트로 구성하여 체험자들이 직접 자연의 소리를 청음하고 녹음하는 경험을 제공한다. 2022년 연말까지는 사운드투어라는 브랜드를 통해 시각적인 관광을 지양하고, 청각적인 관광이라는 분야를 이끌 예정이다.
슬리핑라이언은 스타트업에서 꿈꾸는 J커브를 그려가며 성장하지 않는다. 한라산 등반처럼 완만한 경사로 조금씩 성장한다. 우리는 처음부터 유니콘을 꿈꾸지 않았고, 지역과 함께 만들 수 있는 변화를 바라보며 일했기 때문이다. 유니콘이라 불리는 기업은 사람들의 생활을 급격히 변화시킬 수 있겠지만, 한 지역을 특화시키거나 발전시키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지역을 지역답게 만들고, 필요한 변화를 이끄는 일은 로컬 창업가의 역할이라고 본다. 슬리핑라이언은 앞으로도 제주가 가진 자연의 소리를 기록하고 새로운 경험으로 제주를 전달할 것이다. 사람들이 제주의 자연과 교감하고, 사라져가는 자연의 생명에 더 깊은 관심을 갖길 바랄 뿐이다. 아름다운 섬 제주에서 30년 넘게 장수하면서 지역의 긍정적인 변화를 함께 만들어 나아가는 기업이 되고 싶다.
글‧이용원 제주도 소재 슬리핑라이언 주식회사 대표
안녕하세요. 제주도에서 사운드스케이프 녹음을 해나가는 슬리핑라이언의 대표 이용원입니다. 2020년 1월 언더독스의 창업 기초교육을 받고 그해 3월에 바로 법인을 내고 벌써 3년차가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언더독스 코치로도 활동 자격을 얻었습니다. 아직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제주의 로컬크리에이터 기업이 어떠한 관점으로 사업을 지속해 나아가는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 )
※ 로컬게임체인저는 스타트업레시피와 언더독스가 공동 진행하는 로컬기자단이다. 다양한 지역 창업 생태계의 목소리를 담아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