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과 한국경제학회가 27일 서울 마포구 디캠프 프론트원에서 ‘글로벌 경제 3강 도약을 위한 혁신 자본 대전환’을 주제로 기술사업화 Policy Co-Lab을 개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벤처캐피털, 액셀러레이터 등이 연사로 나서 한국 벤처투자 생태계가 진정한 글로벌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해 심도 있는 진단과 제언을 공유했다.

먼저 박희덕 트랜스링크 인베스트먼트 대표는 한국 벤처투자 시장에 수십조 원의 정책 자금이 쏟아지며 규모 면에서는 비약적으로 성장했지만 정작 이를 받아들일 제도적 토양과 거버넌스는 과거 뱅킹 구조에 머물러 있다고 강하게 지적했다. 박 대표는 “현재 벤처 시장을 보면 돈은 엄청나게 많은데, 자갈밭 같은 토양에 씨앗만 계속 뿌리고 있는 격”이라며, “질적 변화 없이 양적 팽창만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좋은 기술과 자본이 들어와도 제대로 된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실리콘밸리의 빅5 VC들이 한국 시장을 주목하면서도 선뜻 들어오지 못하는 이유로 글로벌 스탠다드와 괴리된 국내 투자 제도를 꼽았다.
이어 박 대표는 실리콘밸리의 성공 배경으로 이사회 중심의 거버넌스와 투자자, 창업자 간의 신뢰 계약 구조를 제시했다. 그는 “창업자는 사업 실행에 집중하고 VC는 자산관리자가 아닌 신뢰 자본을 공급하는 파트너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며 “LP, VC, 파운더 모두가 상호 신뢰와 책임을 바탕으로 거버넌스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홍일 대표는 제3의 자본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기술 기반 딥테크 기업이 시장에서 결실을 보기까지 걸리는 시간과 금융 자본의 회수 주기 간 발생하는 시간의 불일치가 기술금융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고 진단했다. 김 대표는 “연구실 아이디어에서 시작해 시제품 검증, 인허가, 양산을 거쳐 사업화에 이르기까지 딥테크 기업은 최소 7~8년 이상이 소요되지만 대부분의 국내 펀드는 8년 만기에 1년 단위 평가를 받다 보니 투자자들이 당장 수익이 나지 않는 초장기 기술 기업에 선뜻 투자하기 어려운 구조적 착시 현상이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는 LP나 GP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기술의 시간과 자본의 시간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김 대표는 상환 의무가 없거나 장기 투자가 가능한 이른바 제3의 자본 확충을 제시했다. 그는 “미국의 인큐텔(In-Q-Tel)이나 영국의 휴면예금 활용 사례, 싱가포르의 영주권 연계 펀드처럼 안 돌려줘도 되는 기부금·복권기금·휴면자산이나 정부의 과감한 손실보장 장치를 활용해 장기 모험자본을 만들어야 한다”며 “한국의 고유한 자본 자원을 미래 세대 기술과 연결할 수 있도록 경제학적 차원의 시장 재설계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용관 대표는 딥테크 액셀러레이터로 현장에서 직접 스타트업을 육성하고 투자하는 과정에서 체감한 투자 제도의 경직성과 비효율성을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지적했다. 김 대표는 “투자 회사는 무엇보다 본업인 투자와 밸류업에 집중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자원을 모집하고 회수·청산하는 과정에서 드는 코스트가 너무 크다”며 “초기 투자는 고도의 리스크와 길고 깊은 호흡이 필수적임에도 3~5년 미만의 짧은 의무 출자 규정이나 단기 성과 평가 틀에 매여 있어 현장 투자자들이 실질적인 기업 성장에 집중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특히 액셀러레이터의 자회사 설립 및 출자 제한, 지원책에 따르는 과도한 부대 조건 등을 예로 들며 “현실과 맞지 않는 땜질식 제도 개선은 오히려 새로운 규제를 낳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단순히 자금을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본이 시장 내에서 유연하게 순환되고 실패 경험까지 자산화될 수 있는 유연하고 장기적인 투자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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