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덜란드 델프트공대 연구팀이 과학 논문 제목에 쓰인 비틀즈(The Beatles) 곡명과 가사를 조사한 결과 그대로 인용한 사례 2,237건과 말장난으로 비튼 사례 963건을 찾아냈다. 인용은 의학과 사회과학, 컴퓨터과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있었고 연구팀은 비틀즈를 과학 논문 제목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음악가로 결론지었다.
비틀즈가 해체한 지 반세기가 넘었지만 이들 곡은 연구자 사이에서 지금도 인용된다. 장기간에 걸친 연구나 풀기 어려운 과제를 다룬 논문에는 롱 앤드 와인딩 로드(The Long and Winding Road)가, 공동 연구를 다룬 논문에는 위드 어 리틀 헬프 프롬 마이 프렌즈(With a Little Help from My Friends)가 붙는 식으로 곡명이 연구 내용을 나타내는 비유로 쓰인다.
연구팀은 이런 비틀즈발 표현이 학계에 얼마나 퍼져 있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곡명과 완전히 일치하는 논문 제목이 2,048건, 곡명을 비튼 제목이 555건 확인됐다. 여기에 가사를 그대로 쓴 사례 189건과 가사를 비튼 사례 408건이 더해져 모두 3,200건에 달했다. 의학과 사회과학에서 많이 쓰였지만 초록·인용 데이터베이스인 스코퍼스(Scopus)가 나눈 27개 분야 전체에서 발견돼 특정 연구 분야에 국한된 관행은 아니었다.
가장 많이 쓰인 곡명은 롱 앤드 와인딩 로드로 논문 제목 798건에 등장했다. 길고 굽이진 길이라는 표현은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조금씩 나아가는 연구 과정이나 예측하기 어려운 현상을 설명하기에 알맞다. 발작 예측이 안은 과제를 다룬 논문은 발작 예측: 길고 굽이진 길이라는 제목을 달았고 이 논문은 스코퍼스에서 954회 인용됐다.
곡명을 그대로 빌리는 데 그치지 않고 비튼 사례도 있었다. 코로나19 후유증이 폐와 혈소판에 미치는 영향을 다룬 논문은 롱(Long)에서 한 글자를 바꿔 더 렁 앤드 와인딩 로드(The lung and winding road)라는 제목을 붙였다. 수면을 다룬 논문에는 올 유 니드 이즈 러브(All You Need Is Love)를 비튼 올 유 니드 이즈 슬립(All you need is sleep)이, 대사를 다룬 논문에는 올 유 니드 이즈 NAD+?(All you need is NAD+?)가 붙었다.
비틀즈 영향은 요즘 AI 연구에도 간접적으로 미치고 있다. 현재 생성형 AI를 떠받치는 트랜스포머 구조를 발표한 2017년 논문 어텐션 이즈 올 유 니드(Attention Is All You Need) 역시 올 유 니드 이즈 러브를 비튼 제목으로 보인다. 이 논문이 나온 뒤 컴퓨터과학에서는 ○○ 이즈 올 유 니드 형식 논문 제목이 급증했다. 조사에서 확인된 같은 형식 제목 305건 가운데 2017년 이전에 나온 건 14건뿐이었다.
이 밖에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 다이아몬드(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를 클라우드에서 기밀 정보를 빼내는 일에 빗댄 루시 인 더 스카이 위드아웃 다이아몬드(Lucy in the sky without diamonds), 해피니스 이즈 어 웜 건(Happiness Is a Warm Gun)을 바탕에 둔 수학 논문 해피니스 이즈 어 웜 시어럼(Happiness is a warm theorem) 등이 발견됐다. 연구팀은 난해해지기 쉬운 연구 내용에 유머를 더해 독자 눈길을 끌려는 과학자 나름의 궁리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비틀즈가 정말 다른 음악가보다 많이 등장하는지 확인하려고 음반 판매량이 많은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와도 비교했다. 비틀즈 사용 상위 10곡은 논문 제목 1,584건에 등장한 반면 마이클 잭슨 상위 10곡은 65건, 엘비스 프레슬리는 196건에 그쳤다. 연구팀은 이 비교를 근거로 비틀즈를 과학 논문 제목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음악가로 꼽았다.
연구팀에 따르면 비틀즈 언급은 1990년대부터 늘기 시작해 1995년부터 2005년께까지 논문 100만 편당 10건에서 30건으로 3배가 됐다. 논문 출판 수 자체를 감안해도 증가세는 달라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비틀즈를 들으며 자란 세대가 연구자가 된 점, 1995~1996년 진행된 더 비틀즈 앤솔로지(The Beatles Anthology)로 새 세대에까지 곡이 퍼진 점, 학술 논문에서도 친근한 표현이 선호되기 시작한 점 등이 영향을 줬다고 본다. 관련 내용은 이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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