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디자인 플랫폼 기업인 캔바(Canva)는 연 매출 40억 달러 그러니까 5.5조원을 넘긴 유니콘이다. 월 활성 사용자만 해도 2억 6,000만 명에 달하고 기업 가치는 420억 달러 이상이다. 무료화 전략을 앞세워 어도비의 경쟁자로 부상한 곳이기도 하다.
사실 오늘 얘기할 곳은 캔바가 아니다. 남의 회사 얘기부터 불쑥 꺼내든 이유는 캔바에서 리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지난해 11월 회사를 박차고 나가 한국어 말하기 연습 앱인 링그로우(Lingrow)를 직접 만들었다는 얘기 때문이다.

◇ 창업 계기는 韓서 직접 부딪치며 느낀 언어 장벽=호주 출신인 스튜어트 코너(Stewart Connor)는 지금은 서울에 거주하고 있다. 캔바를 그만둔 뒤에는 링그로우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호주 사람이 그것도 한국어 말하기 연습 앱을 만들겠다고 굳이 회사를 왜 그만뒀을까. 그는 “확신은 단순했다”고 말한다. “오래 전부터 만들고 싶었고 매일같이 이 문제를 직접 겪으며 살고 있었고 그런데도 그걸 제대로 해결해주는 게 세상에 없었거든요.”
그가 한국어를 배우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호주에는 워킹홀리데이 우리 말로 하면 관광 취업을 통해 방문하는 한국인이 많다. 스튜어트 역시 다니던 교회에서 만나는 이런 한국인이 점점 늘면서 자연스럽게 한국어와 한국 문화에 관심이 생겼다고 한다. 물론 여기에는 예전부터 해외에서 그것도 영어권이 아닌 국가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은 늘 있었다고. 이런 관심과 바램 속에서 그가 싫었던 건 아마도 그럭저럭 버틴다는 말이었던 모양이다. “영어만 해도 사실 어디서나 그럭저럭 지낼 수는 있지만 그냥 버티는 게 아니라 그 나라 언어와 문화를 내면에서부터 제대로 이해하고 싶었어요.”
2023년 그는 한국을 찾아 서강대 한국어교육원에서 몇 달 간 공부하는 걸 택했다. 타국에서 무턱대고 선택한 길이었지만 한국 생활은 자신의 생활 방식과 더 잘 맞는다고 느꼈단다. 오후만 되면 문을 닫아 버리는 호주와 달리 새벽에도 카페에 앉아서 일할 수 있는 것도 좋았고 모든 게 빨리 돌아가는 분위기도 정말 좋았다.
물론 좋은 일만 있을 순 없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언어 장벽은 단순히 불편한 수준이 아니라 자신의 삶 자체를 피하게 만들 정도였다”고 한다. 올초 한 달 동안 과민성대장증후군을 앓으면서 살면서 그렇게 아팠던 적이 없을 만큼 고생을 했다. 그런데 병원을 가는 일은 계속 미뤄야만 했다. 어떤 날은 죽을 것 같았다면서 미뤘던 이유는 한국어로 증상을 설명하면서 병원 시스템을 헤쳐 나가는 게 통증보다 더 무서웠기 때문이다. 언어 장벽이 한국에서 제대로 생활해보겠다는 외국인에게는 이 정도까지 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한국어교육원에서 느낀 한계도 분명했다. 수업에서 말하기 연습을 해봐도 결국 비슷비슷한 수준인 학생과 그것도 다 같이 방금 배운 내용으로 연습하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한 말이 맞는지 제대로 판단해줄 수 없이 자신처럼 발음이 아직 불안정하고 어떻게 교정해야 할지 모르는 이들과 섀도복싱을 하는 셈이다.
실제로 그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과 연습하는 건 전혀 다르다. 한국어교육원은 아무래도 교사 1명이 스무 명 남짓을 맡으니 개개인에 돌아갈 시간은 거의 없다. “사실 더 큰 문제는 수업이 끝나는 순간 말하기가 뚝 끊긴다는 거예요.” 숙제는 읽기와 쓰기 뿐 혼자서 말하기를 연습할 수 있는 도구 자체도 없었다. 그는 교육원을 다니면서 한국에서 최고라는 말하기 과정에서도 교실을 나서는 순간 말하기를 연습할 곳이 없는 구조적 문제를 깨달았다. 교실은 언어를 가르칠 수는 있어도 원할 때 부담 없이 말하기를 연습할 환경은 줄 수 없었던 것이다.
일부러 한국어를 연습하려고 해도 친절함이 가로막는 경우도 있다. 키오스크에서 한국어 메뉴로 주문해보려 하면 부탁하지 않아도 알아서 영어로 답변을 해준다. 친절함이 되려 한국어 연습을 막은 셈이다. 식당 메뉴도 영어로 표기된 게 많지만 영어 메뉴 절반은 그냥 한국어를 발음대로 써놓은 게 많다. 외국인이 알아듣게 번역 안 된 게 너무 많다는 얘기다. 그도 식당에서 주문이 잘못 나와도 그냥 받아들이고 다른 걸 먹은 적도 많다고 한다.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입장으로 보자면 발음이 조금만 어색해도 상대방이 곧바로 영어로 바꿔주다 보니 그가 정작 연습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인 실제 상황이 오히려 초보자를 가장 위축시키는 곳이 되어 버린 씁쓸한 아이러니다. 사실 링그로우가 탄생한 지점도 여기다. “하고 싶은 말은 정말 많은데 도무지 표현할 수 없는 그 간극을 메우는 게 제 목표입니다.”
◇ “링그로우는 한국어 교육에 빠진 한 겹을 채워주는 도구”=이렇게 탄생한 링그로우(https://lingrow.io/)는 한국어 교육 대체재일까. 그는 대체재가 아니라 “비어 있는 한 겹을 채워주는 보조 도구”라고 말한다. 교사와 학원은 언어와 구조를 가르치는데 뛰어나지만 원하는 시간이라면 언제든 어떤 대화가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여러 번 반복하고 싶을 때 곁에 있어 줄 수는 없다. 링그로우가 채우려는 비어 있는 한 겹이 그것이다. 수업 도중 혹은 끝난 뒤에도 원하면 언제든 말하기를 연습하고 발음과 문법에 대해 즉각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
링그로우에는 학생 뿐 아니라 교육자용 페이지도 있다. 학원이나 대학, 어학 과정과 협업해서 학교 커리큘럼을 시나리오에 녹여서 학생이 수업 밖에서도 계속 말하기를 이어갈 수 있게 하려는 것이다. 그는 링그로우가 기관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보완하는 방향이라며 한국 교육 기관과 협업하는 데 관심이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사실 인터넷에는 이미 듀오링고 같은 유명한 외국어 학습 서비스가 있지 않나. 굳이 왜 링그로우였을까.
“기존 언어 앱 대부분은 실제로 말할 수 있느냐보다 연습 학습과 잔존율에 최적화되어 있어요.” 1,000일 연속 학습을 채워도 커피 한 잔 주문하다 얼어붙을 수 있다는 것. 엄청나게 연습량을 채워 봐도 정작 기본적인 실제 대화를 못 하는 모습을 담은 유튜브 영상이 마치 한 장르처럼 많다. “링그로우는 정반대로 설계했어요. 말하기 중심이고 AI와 실제로 대화를 나누면서 발음과 문법에 대한 즉각적인 피드백을 줘요.”

그가 설명하는 기존 언어 학습 앱과 다른 점을 보면 첫 번째는 편법을 없앴다는 것. 기존 앱은 늘 쓰던 단어와 표현만 반복해도 더 도전하게 만드는 장치가 없기 일쑤다. 링그로우에는 모든 대화에 목표 시스템이 있다. 시나리오마다 상황에 맞는 새로운 어휘와 문법을 쓰도록 유도하는 목표가 주어지는 것. 이걸 해내야 점수를 얻는다.
2번째는 가이드 학습. AI가 5∼10분짜리 한 가지 개념을 잡아 어휘를 가르치고 테스트하고 문법과 문화적 맥락까지 설명해준다. 그런 다음 연습 문제를 주고 마지막에는 방금 배운 내용을 활용할 수 있는 짧은 역할극을 제시해 실제 상황이 체화되도록 돕는다. 수업 중에는 AI가 직접 그려가며 개념과 해야 할 말을 정리해주는 다이내믹 화이트보드 기능도 제공한다.
“만드는 방식 자체도 다르다고 생각해요. 실생활에서 한국어로 해야 할 말이 생기면 저도 그 상황을 앱에 시나리오로 만들어 넣어요.” 그가 실제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겪는 상황을 시나리오로 넣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그는 링그로우가 일반 교재가 아니라 “자신의 실제 실패의 기록에서 빚어진 결과물”이라고 표현한다.
◇ 한국 지사 설립 계획중…지금 서울에 머무는 건 우연이 아니다=앞서 밝혔듯 그는 지금은 링그로우에만 전념하고 있다. 캔바를 그만둘 시점을 결정한 요소 중 하나는 AI였다고 말한다. AI 덕에 혼자서도 훨씬 빠르게 만들고 출시할 수 있게 됐다.
그는 링그로우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말한다. 링그로우는 현재 15개 언어를 지원한다. 지금도 계속 업데이트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한 언어를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효율적이고 몰입감 있게 배울 수 있는 플랫폼으로 키우는 게 목표”다.
링그로우는 호주에 설립한 호주 법인이지만 그는 한국에서 직접 거주하며 한국어를 실제 상황에서 몸으로 시험하고 있다. 스타트업 비자를 이용해서 한국 자회사도 설립할 계획이다. 이유는 2가지다. 첫째는 시장 자체. 영어를 배우는 한국인이 정말 많고 링그로우는 이미 15개 언어를 지원하는 만큼 링그로우가 내세우는 말하기 중심 방식을 영어를 배우는 한국인에게 가져오는 건 자연스러운 다음 단계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당연히 한국에 실제 거점이 있을 때 가장 잘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둘째는 기관 협업이다.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원이나 대학 과정에 링그로우를 접목하려면 한국 현지 법인이 있으면 훨씬 수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이 한국에 있는 건 “우연히 머무는 게 아니라 회사가 나아갈 방향의 중심에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하는 방향이 사실 영어를 배우는 한국인이다. 단순히 언어만 바꾸는 게 아니라 사용자층에 맞게 인터페이스와 학습 방식 자체를 현지화할 계획이다. 국내에 거점을 두는 가장 큰 의미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링그로우는 아직 출시 몇 개월이 안 되어 가입자는 수천 명 수준이다. 사용자는 주로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다. 그는 시장 자체는 낙관적으로 본다. K-팝과 K-드라마, 한국 문화 전반에 힘입어 한국어는 이제 변방의 언어가 아니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배우는 언어 중 하나가 됐다. 물론 수요 대부분은 한국 밖에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에 대해서도 물었다. 그는 스타트업 비자와 지원이 확실히 간소화됐고 그 과정을 직접 거치고 있는 입장에선 이런 방향성이 정말 고맙다고 말한다. 사실 외국인이 정착도 하고 서류를 처리하고 제2언어로 사업을 하려면 여전히 적응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는 자신 같은 창업자를 적극적으로 불러들이는 진지한 기술 생태계와 기회가 이런 불편함을 충분히 넘어선다고 본다는 것. “정말 인상 깊었던 건 한국이 외국인 기술 창업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얼마나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는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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