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레시피가 초기 투자사부터 시리즈B 이상 벤처캐피털까지 15여명(일부 익명)을 대상으로 2023년 투자 평가와 2024년 투자 전망에 대한 의견을 물어 8개 토픽으로 정리했다. 투자자들의 설문조사를 담은 기사는 이곳에서 확인 가능하다.
“2023년은 과열화가 정상화된 해“
2023년에는 2022년 하반기부터 보수적으로 변한 투자 시장이 그대로 이어진 해였다. 투자 단계 관계 없이 응답자 과반수 이상이 2023년 투자 시장을 매우 나빴다고 평가했다. 나빴다고 응답한 전년도보다 악화된 것. 반면 과거의 과열된 분위기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들도 많았다.
양상환 네이버D2SF 리더는 “2023년은 투자 생태계가 과대평가가 되어있다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된 해“라고 평가하며 과거 비정상적인 고점을 평균으로 본다면 올해 혹한기가 맞지만 오히려 정상화되는 과정”이라고 전했다. 이덕준 디쓰리쥬빌리 대표도 “인플레이션과 높은 이자율이 모험자본을 위축시키고 스타트업 기업 가치가 하락했지만 어떻게 보면 이것은 비정상적인 과열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가는 과정”이었다고 답했다.
투자자 입장에서는 장단점이 있었다. 김호민 스파크랩 대표는 “투자 환경에 역대급으로 어려웠던 해였다”며 “새로운 투자 회사를 찾기보다는 기존 포트폴리오에 후속 투자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꾸는 투자자도 많았다”고 말했다. 어려워진 투자 환경으로 떨어진 기업가치에 창업자들은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며 버티는 경우도 있어 투자에 어려움도 있었다.
피에르 주 코렐라이캐피털 대표는 “비정상적으로 상승된 기업가치가 적절한 수준으로 조정된 것이 투자사 입장에서는 긍정적인 부분이지만 유럽 같은 경우 좋은 투자 시기까지 버티는 스타트업이 많아 딜소싱을 하기 어려웠고 국내에서는 아직도 기업가치 조정에 부담을 느끼는 스타트업들이 많았다”고 답했다.
“내실 갖춘 실행력과 의지 강한 팀 찾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투자자들은 투자 결정 시 성장성보다는 수익성을 봤다. 과거 유동성이 풍부할 때는 성장성 기반의 투자금으로 몸집을 키웠지만 이 전략은 더 이상 통용되지 못한다.
투자자들 기본을 잘 갖춘 팀을 찾았다. 보수적인 평가에 숫자가 중요해졌지만 당장의 매출, 영업 이익을 기대하기보다는 창업 팀의 의지를 더 많이 봤다는 투자자도 다수였다. 초기 단계일수록 사람에 집중했으며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팀의 실행력, 경험,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증명해나가는 팀 또 시장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는 분야인 기후 테크, AI 인프라 등을 눈여겨봤다.
황희철 블루포인트파트너스 부대표는 “투자금으로 외형 확장을 통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는 기업보다는 사업 성과와 내재적 가치를 지닌 기업들을 주목한다”고 답했다. 이덕준 대표는 “시리즈 A 경우 월 BEP는 도달 못했더라도 유니트이코노믹상 공헌이익률이 높은 곳 혹은 시리즈B 이상의 경우 월 BEP 도달에 근접해야 투자유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같다”며 “즉 펀드멘탈이 좋거나 AI와 같이 성공 시 미래의 성장 가능성이 아주 크다는 확신을 줘야한다”고 변한 투자 시장을 설명했다.
“정부 역할 중요 VS 정부는 손 떼야”
투자 시장 침체기 극복을 위해 정부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정부는 2022년부터 투자 시장 활성화를 위해 민간모태펀드 조성, 인센티브 제공 등 지원 계획을 밝혀왔다. 2023년에는 실제 1000억 원 규모 민간 모태펀드 조성에도 성공했다.
이를 바라보는 투자자의 시선은 긍정과 부정으로 갈라졌다.
김호민 대표는 “아직 정부 정책의 효용성을 판단하기 어렵지만 경제가 어려운 지금, 정부의 지속적으로 투자 활성화 정책은 긍정적”이라고 밝혔다. 이택경 매쉬업엔젤스 대표는 “장기적으로 민간 펀드를 활성화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현재 투자 시장에 출자자의 자금이 메말라가고 있는 상황이기에 이 시기에 모태펀드 예산을 줄이는 것은 맞지 않다”며 정부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투자자들이 투자를 미루지 말고 빨리 집행할 수 있게 만들고 그 리스크에 대해서는 정부도 함께 감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반대로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없어야 한다는 의견도 다수였다. 양상환 리더는 “현재의 혹한기는 최근 수 년간 정해진 시장 크기를 넘어서는 유동성이 공급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며 “투자 생태계의 초기 단계에서 정부 주도의 펀드는 이미 마중물 역할을 충분히 했다며 지금은 시장이 자정 작용을 해야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미 발육의 상태가 끝난 상태에서 영양제를 과하게 투입하면 부작용이 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김홍일 유니콘인베스먼트 대표 역시 “현재의 모태와 성장 금융 위주의 자금 집행을 축소하고 시장 실패와 정부 개입의 악순환 고리를 단절해야 한다”며 “스타트업 위한 인내 자본인지 전달 기구로 전락한 운용사를 위한 예산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목소리를 냈다. 시장 실패가 정부 실패인지 VC 문제인지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하반기 투자 회복? 글쎄….”
1년 내내 투자 흐름은 대체적으로 하락과 상승이 반복됐고 하반기에 들어 뚜렷한 상승 기류가 보이며 회복 신호가 포착됐다. 하지만 투자자들은 이를 유의미한 수준이라고 보지 않았다.
하반기는 소진 이슈로 인한 계절적 특성이 반영될 뿐만 아니라 드라이파우더 소진 등의 영향이 있었다는 것. 그리고 체감상 포트폴리오사의 후속투자 유치시 투자 기류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도 그 이유다. 또 투자자들의 시장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지지 않았고 분야의 리더에게 큰 자금이 몰린 일시적 현상으로 보는 것이 더 맞다는 의견이 지배이었다.
“성장 분야는 역시 AI“
투자가 계속 이뤄질 분야는 단연 AI 기업으로 나타났다. 투자자들 90%이상이 AI 기업을 선택했다. 특히 2023년은 오픈AI 등장으로 생성형 AI가 큰 주목을 받았다. 투자 시장이 보수적으로 유지됐지만 생성형 AI 트렌드에 힘입어 국내외 AI 투자는 상대적으로 활발한 편이었다고 평가했다.
다만 국내 AI 기업에 대한 경쟁력에 대한 평가는 의견이 분분했다. 특히 생성형 AI는 다른 기술 영역과는 달리 기술 경쟁력이 매우 빠른 속도로 국내와 해외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는 것. 인공지능 스타트업의 잠재적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되나 비지니스 성과는 다소 부족하다고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타트업에게는 기회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어떤 스타트업이 위너가될 지 예측이 불가능한 영역이지만 LLM 등은 스타트업이 경쟁하기에는 빅테크 회사의 자본 경쟁이 될 가능성이 크며 좀 더 버티컬한 영역에서 기회를 찾는 것이 유리할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한국 대기업들도 생성형 AI가 매우 중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국내 스타트업에게도 기회가 있다고도 했다.
AI 외에는 환경(기후, 에너지, ESG) 영역 투자 전망이 밝았다. 또 디지털헬스케어, 제조, 콘텐츠/미디어도 유망 순위에 올랐다. 제현주 인비저닝파트너스 대표는 “기후변화 대응이 시급하다는 문제의식은 점점 높아지는 상황이고 여러 산업 분야에 걸쳐 관련한 글로벌 시장의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기 때문에 기후테크 투자는 2023년에도 다른 영역 대비 상대적으로 견조하게 유지됐다”며 “2024년에도 이러한 흐름은 지속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해당 분야 성장 가능성을 언급했다.
반면 가장 인기가 저조한 분야는 에듀테크, 모빌리티, 핀테크 순으로 나타났다.
M&A 와 IPO
M&A와 IPO 시장은 여전히 어려울 것으로 봤다. 2022년 이후 기업 공개 시장은 움직임이 적은 상태다. 성장 단계 스타트업이 늘어남에 따라 더 많은 IPO 와 M&A를 기대해야 하지만 시장 상황이 녹록치 않은 탓이다. 또 파두 IPO 이후 주가 하락은 많은 스타트업이 도전하는 기술특례상장 시장의 허들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많은 투자자들은 파두 사태가 2024년 시장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봤다. 특히 기술특례상장에는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전망이다. 수익성이 나오지 않는 기업에 대해서는 주식시장에서 높은 밸류에이션을 주지 않을 것이란 것. 하지만 펀드멘털이 좋은팀이 IPO로 가는데는 큰 지장은 없을 것으로 봤으며 문제는 보완해가면 될 것이라고 답했다.
회복은 2024년 하반기쯤
2024년 투자는 다행히 2023년보다 나아질 전망이다. 투자자 과반 이상이 투자를 늘릴 것이라고 응답했고 줄인다고 답한 투자자는 한 명도 없었다. 투자자 대부분은 2024년 하반기부터 2025년 상반기를 회복 시기로 예상했다. 이는 지난해 전망한 2024년 상반기에서 더 늦춰진 시점이긴하다. 2025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 투자자들도 있기 때문에 환경 변화를 눈여겨 볼 필요가 있고 특히 2024년 미국 대선은 거시 변수가 될 것으로 주목해야 할 이벤트로 봤다.
혹한기 예비 창업자를 위한 조언?
투자자들은 투자 혹한기 스타트업을 시작하려는 창업자들에게 조언도 남겼다. 다수는 더 촘촘한 창업 준비가 필요하고 어떤 문제를 풀고 싶은 지, 왜 도전하는 지를 명확히 하고 투자 유치 전 제품/팀 빌딩에 집중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최소 18개월의 런웨이를 마련하고 창업지원기관의 도움을 받거나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을 타깃하는것도 추천했다. 그리고 이런 어려운 시기에 창업한다면 오래가는 기업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