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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근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장이 꿈꾸는 오픈 콜라보레이션


이석원 기자 - 2024년 10월 19일

메리츠증권, 코레트인베스트먼트, 우리종합금융…. 딱 봐도 금융인이다. 그런데 이력을 되짚다 보니 중간에 이질감이 느껴지는 회사명이 하나 보인다. 미래산업이다. 미래산업은 정문술 전 회장을 떠올리게 하는 벤처 1세대를 이끈 반도체 장비 제조 기업이다. 1999년 이 회사는 국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미국 나스닥에 상장했다. 물론 다른 면으로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정 회장은 자녀에게 부를 대물림하지 않겠다며 500억 원이 넘는 금액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쾌척하기도 했다.

벤처 1세대 스타 기업의 기억으로 되돌린 시계=시계를 1999년까지 돌리게 만든 인물은 이영근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장이다. 그와 만나는 자리에서 먼저 꺼내든 질문도 갑툭튀처럼 보였던 미래산업과의 관계였다. 정문술 회장이 미래산업에서 조금 이른 시기 은퇴를 하면서 CEO와 CFO, CTO에게 권력을 나눠줬다. 하지만 선장이 떠나자 통제 시스템도 헐거워졌고 마치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라도 되듯 회사는 분할됐다. 이 센터장은 이 와중에 2014년부터 2019년까지 미래산업 회장을 맡아 혼란을 수습하고 경영 정상화에 나섰다.

이 센터장에게 궁금했던 게 미래산업 하나만은 아니었다. 그는 앞선 금융 분야 경력 외에도 지천명(知天命)에 국립공주대에서 컴퓨터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센터장에게 금융 전문가인지 아니면 IT 전문가인지 물어봄직도 했다. 사실 이 센터장이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던 이유도 공장에서 숙식하며 미래산업 경영 정상화에 나서는 등 IT 직종에서 일하면서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그는 금융 분야에선 주로 채권 쪽 전문가였다. 주식이야 워낙 변동성이 높은 분야지만 채권은 상대적으로 1∼2% 이자율 싸움이다. 보수적인 분야일 수밖에 없고 돈의 흐름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그에게도 채화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채권 금융 전문가가 강화하려는 의외의 3가지=서론이 너무 길었다. 이제 본론으로 돌아갈 차례다. 이렇게 금융과 산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지난 4월 4대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장으로 취임했다. 민에서 관으로 옮긴 느낌은 어떨까.

그에게도 돌아온 첫 마디는 “어색하다”는 것이다. “민간에서 일할 땐 아무래도 목표 지향적이고 과정보다 성과에 집중해오는 삶을 살았다”면 “공공은 결과보다 절차의 공정성 등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게 그가 말하는 어색함의 이유다.

그는 취임 이후 직원들이 위축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 센터장은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가 어쨌든 지난 10년간 자생적으로 서바이벌을 해왔다는 건 존재 이유가 있다는 걸 증명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니 직원들이 자긍심을 가져도 된다”고 강조한다.

이 센터장은 “수익을 낸다는 건 누군가의 것을 어찌 보면 빼앗는 게임일 수 있지만 센터는 계속 줘야 하는 곳”이라면서 잘 줘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가 스타트업에게 잘 줄 수 있는 게 뭘까. 혹시 금융업일까 싶어 물으니 그가 꺼내든 화두는 제조업, 딥테크다. 그는 미중 패권 경쟁이 격화되면서 자국으로 제조업을 회귀시키려는 전쟁,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 과정에서 “제조업 기반을 자칫 미국에 빼앗기면서 제조업 공동화 사태도 우려될 수 있다”고 말한다. 센터가 이런 문제를 해소할 수 있는 씨앗을 뿌리는 역할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물론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라고 하면 바로 떠올릴 만한 오픈이노베이션도 빼놓을 수 없다. 이 센터장은 스타트업이 대기업에 뭔가를 팔 수 있는 기회를 민들어줄 수 있다는 게 장점이지만 기술 탈취 등 문제가 발생하는 일도 더러 있는 만큼 센터가 중간에서 브릿지 역할을 해주면 안전장치가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가 오픈이노베이션 사업을 본격화한 건 지난 2019년. 벌써 5년이다. 인터뷰 당일에도 센터 측은 NH농협은행과 진행 중인 오픈이노베이션(START-UP OPEN STAGE) 1:1 밋업으로 분주했다. 물론 이 센터장은 “내년부터는 오픈이노베이션을 넘어 오픈 콜라보레이션 그러니까 대기업과 스타트업이 동등한 협업을 할 수 있는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다. 그는 대기업 내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면서 사내벤처 등 대기업 내부에서 일어나는 혁신도 중요하지만 스타트업 같은 외부 혁신을 들여오면 결국 오픈이노베이션으로 인한 가장 큰 수혜자는 대기업이라고 강조한다. 이런 점에서 그동안은 정부가 지원하는 체제였다면 이젠 수요자도 부담이 필요하고 그래야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고 말한다.

이미 딥테크와 오픈이노베이션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활발해지고 있다. 얼마 전 전국 7개 창조경제혁신센터가 딥테크 분야 공동 오픈이노베이션을 개최한다는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공동으로 뭔가를 하기 쉽지 않은 조직 7곳이 모여서 한꺼번에 행사를 진행한다는 게 재미있다 싶었는데 이것 역시 이 센터장이 “함께 해서 시너지를 내자”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는 앞으로 이런 센터간 협업이 더 늘어다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센터간 협업도 더 강화세컨더리 펀드 플랫폼도 시작=이 센터장이 그리는 3번째 그림은 투자다.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 내부에는 지금은 투자팀이 따로 없다. 하지만 내부에 이미 투자 TF를 만든 상태다. 올해 안에 조합도 만들 예정이고 내년부터는 이 분야 사업을 본격화할 방침이다. 서울창조경제혁신센터는 또 지난 9월 26일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16개 주요 벤처캐피털과 세컨더리 펀드 플랫폼도 만들었다. 외부에 공개되어 있는 건 아니지만 실질적인 구주 거래 성사를 돕겠다는 것. 매달 클로즈드 IR도 진행할 예정이다(참여사 : 메디치인베스트먼트, 메이플투자파트너스, 미래에셋캐피탈, 스마트스터디벤처스, 시너지IB투자, SB파트너스, 에이에프더블유파트너스, 유안타인베스트먼트, 인터베스트, KB인베스트먼트, 코오롱인베스트먼트, 타임폴리오자산운용, 펜처인베스트먼트, 포스코기술투자, 포지티브인베스트먼트, 프렌드투자파트너스).

117일. 미팅을 빙자한 막무가내 인터뷰를 시도한 날은 그가 센터장에 부임한지 딱 117일 된 날이다. 이 센터장은 매일 며칠이 지났는지 약속하듯 날짜를 세고 있다. 함께 배석한 김영준 창업혁신팀장은 이 센터장의 장점으로 “동기부여를 잘해준다”는 점을 든다. 이런 조직 내외 동기부여가 내년에 무슨 그림을 만들어줄지 조금 궁금해도 괜찮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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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기자

월간 아하PC, HowPC 잡지시대를 거쳐 지디넷, 전자신문인터넷 부장, 컨슈머저널 이버즈 편집장, 테크홀릭 발행인, 벤처스퀘어 편집장 등 온라인 IT 매체에서 '기술시대'를 지켜봐 왔다. 여전히 활력 넘치게 변화하는 이 시장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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