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은 사실 에디슨이나 되어야 고개가 끄덕여지는 얘기일지도 모른다. 사실 실패가 재미있는 이는 없다. 조사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으로 스타트업 5년 생존율은 27∼34%에 불과하다. 쉽게 말해 창업한 기업 3곳 가운데 적어도 2곳 이상은 5년 안에 망한다는 얘기다. 현실은 이렇지만 쏟아지는 수많은 스타트업 행사가 말하는 건 성공이다.
벤처기업협회 산하 스타트업위원회와 YCN(Young CEO Network)가 지난 5일 조금 색다른 행사를 열었다. 서울 용산시제품제작소에서 진행한 실패 전시회(Fail Fair)가 그것. 젊은 CEO가 중심이 되어 열린 행사여서 그런지 실패 경험을 공유하겠다는 취지를 내건 이 자리 분위기는 위트로 가득했다. 박진우 YCN 회장은 인사말 도중 “당초 40명 모집하려고 했는데 30명만 모여서 모객도 실패”라는 말로 이 날 주제를 위트를 곁들여 강조하기도 했다.
◇ “30억짜리 실패가 없었다면 나중에 100억짜리 실수했을 것”=이 날 강연에 나선 양준철 온오프믹스 대표는 어린 시절로 시계를 되돌려 실패담을 쏟아냈다. 양 대표는 부모님이 사업에 실패하면서 첫 간접 실패 경험을 겪어야 했다. 넉넉하던 집안 살림 덕에 성악을 준비하던 양 대표 역시 중학생이었지만 자신이 뭔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 해커스랩에서 학생 창업팀 모아 중3이 되자 포스코 과학 홈페이지 경진 대회에 입상했다. 아직 어린 나이였지만 그는 2001년 T2DN이라는 기업을 공동 창업했지만 이번에는 본인이 직접 실패를 경험해야 했다. 시기 질투나 팀워크 붕괴까지 더해지면서 이 회사는 2003년 폐업을 하게 된다.

2002년 양 대표는 2번째 창업에 나섰다. SR Ent를 공동 창업한 것. 이 회사는 2003년 10억원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지만 이 자금은 공동 창업자 탓에 1년 반 만에 모두 소진되어 버린다. 2003년 양 대표는 2,000만원 부채와 함께 고등학교 생활을 마무리해야 했다. 2번째 실패다.
어린 시절부터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던 그는 2004년 다음, 2005년 나무커뮤니케이션, 2005년 첫눈, 2007년 투어익스프레스, 2009년 씨디네트웍스까지 굴곡 많았던 직장 생활을 거쳤다. 그는 직장 생활도 돌이켜 보면 실패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온오프믹스를 창업한 이후에도 실패는 있었다. 카카오 관련 펀드 투자 거절이나 2017년 한화생명의 경우 투자확약서 단계에서, 이후 사모펀드와의 M&A도 “경영 판단상 실패”로 무산됐다는 설명이다. 이런 와중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졌다. 이전까지 온오프믹스 통장에는 17억원대 현금이 있었지만 코로나19 이후 회사 통장 잔고는 제로가 됐다.
2022년 온오프믹스는 85억원 투자 유치를 하며 숨통이 트였다. 하지만 이 때에도 계약상 문제로 결국 30억원만 투자금이 들어왔다. 양 대표는 투자를 유치하며 사업을 빠르게 키우겠다고 인력을 단기간에 2배 이상 채용했지만 추가 투자금이 들어오지 않게 되면서 결국 2024년에는 대규모 구조 조정에 나서야 했다. 이 기간 중 그는 넥스트스토리 레저사업부를 인수하며 M&A에도 도전했지만 인수 후 통합 과정에서 조직 문화 붕괴나 갈등이 심화되면서 결국 구조조정 대상에 올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 쉬는 시간에 살짝 물어보니 “올해 새 영역에 도전할 예정이고 빠르면 하반기에는 볼 수 있게 될 것”이란다.

양 대표는 “지난 25년간을 되돌아보면 끊임없는 실패의 연속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는 실패가 남긴 자산으로 부모님 사업 실패를 보며 사업은 자본력과 경험이 있어야 하지만 부족하다면 이를 대체할 파트너가 필요하다는 점, 돈이라는 것도 결국은 전문 지식이 쌓여 경력이 되고 시간이 누적되면 이뤄진다는 점을 배웠다고 말한다. 양 대표는 “창업 실패는 결국 또 다른 창업으로 이어졌다”면서 “6년간의 직장 생활 실패도 결국은 온오프믹스 창업으로 이어졌다”고 말한다. 실패는 항상 많은 걸 남긴다는 것.
양 대표는 다만 “회고 없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성공은 누구나 할 수는 없지만 사업을 한다면 생존은 일단 필수다. 양 대표는 자신과 비슷한 시기 활동을 시작했던 수많은 창업자 가운데 아직도 사업을 영위하는 남은 사람은 표철민 대표가 거의 유일하다며 난이도를 따지면 창업보다는 사업의 연속성이 훨씬 어렵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사업의 영속성을 갖게 하는 힘은 결국 끊임 없는 회고와 반성, 수정, 중꺽마다. 양 대표는 “누구나 갓난아이 시절에는 매일 실패한다면서 처음 해보는 일이니 당연히 매일이 시행착오라고 말한다. 완벽하지 않으니 실패하는 게 당연하고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것보다 빠르게 인정하고 또 다른 도전을 하는 게 현명하다는 조언이다. 그는 ”만일 30억 투자를 받았던 시절 실패를 안했다면 나중에 100억짜리 실패를 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실패가 만들어준 회고와 반성이 자산인 이유다.

◇ 표어부터 사진까지…실패 경험을 유쾌하게 풀어낸 자리=이 날 행사에는 강연 외에도 김승우 다한FA 대표, 김지수 마이마이마이 대표, 김재필 에이드올 대표, 김준태 왓섭 대표가 실패 공모 사례를 발표하는 한편 실패 사진과 표어 전시회, 데스밸리 포토존 등도 함께 꾸몄다. 인기 애니메이션인 케이팝 데몬 헌터스 콘셉트를 접목해 운영진은 모두 저승사자 캐릭터로 갓을 입었고 참관객은 모두 드레스 코드로 블랙을 택했다. 갓 안에는 작은 실패를 의미하는 호롱불을 담기도 했다. 또 박지은 마음모음 대표가 리더의 선한 영향력을 주제로 한 마음챙김 강연을 하기도 했다.
이 날 주제는 ∑실패=도전이었다. 홍석재 벤처기업협회 팀장은 “시그마 실패는 곧 도전, 실패가 쌓여 성공이 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라고 설명한다. 박진우 YCN 회장(다다익스 대표)은 “분기마다 주기적으로 실패 전시회를 진행할 예정”이라면서 “실패는 곧 도전이라는 콘텐츠, 키워드를 중심으로 YCN CEO 회원 200여 명 참여를 유도하는 한편 주기적으로 모일 계기를 만들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 날 드레스코드에 맞춰 검은색 옷을 준비하며 오래 전 읽은 책이 문득 떠올랐다. 실패로 가득한 창업 가이드라는 부제를 내걸었던 리틀블랙북이라는 책이다. 창업을 실패로 이끄는 요인 14가지를 정리한 이 책이 말하는 실패 요인을 조금 길지만 읊어보면 “동기는 있지만 동기 부여 없이 창업한다, 창업가 기질이 없다, 투지가 없다, 동업자가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데도 동업을 한다, 중요한 선정 기준 없이 동업자를 선택한다, 기여도가 다른데 지분을 동일하게 나눈다, 동업자 사이에 신뢰와 대화가 없다, 성공이 아이디어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좋아하지 않거나 잘 모르는 업종에 발을 들여놓는다, 수익성이 적거나 침체된 업종을 선택한다, 사업이 개인의 경제적 필요와 물질적인 야심에 좌우되도록 한다, 삶의 균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깨닫지 못하고 창업한다, 가장 짧은 시일 안에 지속 가능한 이익을 내지 않는 사업 모델을 채택한다”다. 책에선 “진정한 창업가는 불확실성에서 특별한 기쁨을 찾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날 표어 전시회 수상작 중 하나가 실패 전시회의 의미를 짚어준 게 아닐까 싶다. “실패는 아프다. 근데 좀 웃기기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