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국내 유망 스타트업 100여 곳이 문재인 대통령 핀란드 순방길에 동행했다. 북유럽 스타트업 생태계를 경험하고 진출 기회를 모색하기 위해서다. 핀란드는 550만 인구를 보유한 작은 국가지만 인구 대비 가장 많은 스타트업을 배출한 스타트업 강국. 우리나라도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해 핀란드 성공 사례를 참고하고 있다. 당시 순방으로 양국 스타트업간 협력 고리가 만들어진 직후 국내 기업의 북유럽 진출도 한결 수월해졌다.
헬싱키 시내에 자리 잡은 스타트업 캠퍼스 마리아01(Maria01)은 올해 한국 스타트업을 직접 육성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주관하는 론치패드 프로그램을 통해 콘텐츠 스타트업 5곳을 대상으로 유럽 진출을 지원하게 된 것.
빌레 시모라(Ville Simola) 마리아01 대표는 “아시아 지역 협력 파트너를 늘리는 과정에서 한국콘텐츠진흥원과 연이 닿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 기술 생태계와 한국 스타트업이 보유한 기술적 잠재력을 높이 평가했다. 이번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스타트업과 파트너를 맺고 노르딕 지역 투자사 연결과 시장 안착을 지원할 계획이다.
핀란드는 정부, 학계, 민간 기업이 유기적으로 협업하는 독특한 창업 문화를 갖고 있다. 정부가 지원하는 R&D 프로그램이 많고 최근에는 초기 스타트업 펀딩도 늘어난 상황이라 스타트업에게는 더 좋은 창업 환경이 마련됐다. 정부 역할도 크지만 아래에서 위로 주도하는 버텀업(Bottom up)으로 창업 성공을 만들어내는 것도 핀란드만의 방식이다.
마리아01 역시 헬싱키시가 지원하는 정부 산하 스타트업 지원 기관이지만 커뮤니티 주도로 다양한 스타트업 구성원이 협력해 운영한다. 현재 마리아01 내에는 185개 이상 스타트업과 10여 개 벤처캐피털이 상주하고 있다.
◇ 게임 강국 핀란드…콘텐츠 기업 성공 가능성 높아=시모라 대표는 “핀란드는 콘텐츠 스타트업이 진출해 성공할 가능성이 높은 환경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클래시오브클랜 개발사 슈퍼셀(Supercell)과 앵그리버드를 만든 로비오(Rovio) 등 유니콘 게임 스타트업을 예로 들며 핀란드는 게임과 엔터테인먼트 시장이 매우 크고 유망하다고 덧붙였다. 콘텐츠 기업의 글로벌 진출을 지원하는 이번 론치패드 프로그램 취지와 잘 맞는 셈이다.
마리아01은 최근 론치패드 프로그램을 통해 프리 액셀러레이팅을 진행한 여러 팀 중에서 팀 역량, 프로덕트마켓핏, 비즈니스모델 등 3가지를 기준으로 밀착 지원을 진행할 5개 기업(블루시그널, 렛시, 샘코퍼레이션, 비디오몬스터, 퐁도)을 최종 선발했다. 블루시그널(Bluesignal)은 미래 교통 상황 예측 엔진 및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교통문제와 사고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솔루션을 개발하는 기업. 퐁도(Fontho)는 마이크로 그레이딩 테크 기반 여성 플러스 사이즈 의류 브랜드 셀렉(Chelec)을 서비스하고 있다. 비디오몬스터(Video Monster)는 숏폼 전용 영상제작 플랫폼과 롱폼 전용 AI 제작툴을 만드는 곳이며 샘코퍼레이션(Sam corporation)은 인공지능 기반 스토리보드 제작 플랫폼 스토리 크리에이터(Story Creator)를 만든다. 렛시(Letsee)는 별도 앱 설치 없이 웹 기반 증강현실 소프트웨어 개발도구를 제공하고 있다.
이 가운데 시모라 대표가 핀란드에서 성공할 곳으로 뽑은 스타트업은 스토리제작 플랫폼 샘코퍼레이션과 교통 예측 솔루션 블루시그널 2곳이다. 그는 “영상 소비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스토리보드는 프로듀서가 사용하기 좋은 툴”이라며 “노르딕 지역을 넘어 글로벌 단계에서도 성공할 수 있는 아이템”으로 평가했다. 실행력과 팀 역량 역시 샘코퍼레이션의 강점으로 꼽았다. 블루시그널에는 기술 측면에 점수를 줬다. 모빌리티 시장이 커지고 있다는 점에서 시장 규모도 크다고 봤다.
◇현지 정착 지원에 주력=마리아01은 글로벌 스타트업 현지 정착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먼저 정부 산하 기관인 비즈니스 핀란드를 통해 비자와 주거를 지원한다. 또 보육 공간 제공은 물론 현지 네트워크를 통해 기업 고객을 확보할 수 있도록 돕고 단계별 투자사 연결도 지원한다. 직접 투자는 진행하지 않는다.
시모라 대표는 현지 시장 진출을 위한 준비에 대해서 회사 전략을 확립하고 시장 조사를 통해 규제 등을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기본이지만 올바른 현지 언어로 제품이 노출되고 있는지 확인할 것도 당부했다. 이후에는 시장을 잘 알고 있는 현지인 그리고 투자사와 함께 일하는 경험을 쌓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조언했다. 시모라 대표는 “핀란드는 영어를 사용하는 비율이 높다”며 “정착을 위해 언어가 추가로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장점”이라고 말했다.
핀란드는 내수시장이 작다. 이로 인해 글로벌 진출과 더불어 글로벌 기업과 상생과 협력은 생존을 위한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한국 스타트업 뿐 아니라 다양한 스타트업과 손잡고 시장을 확대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한국콘텐츠진흥원과의 협력과 이번 론치패드 프로그램을 통해서 한국 스타트업에게 좋은 연결고리 역할을 하겠다는 시모라 대표는 “코로나19에도 불구하고 올해 유럽 최대 스타트업 행사인 슬러시가 작지만 오프라인에서 열린다”며 “한국 스타트업도 참여해 여러 기회를 얻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