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케팅을 해야 하는데, 그 전에 제품도 손봐야 하고 영업 자료도 필요하다.”
초기 스타트업의 채용 공고는 이런 고민에서 길어지곤 한다. 고객을 만날 사람이 필요해 영업 담당자를 찾다가, 제안서를 만들고 제품 개선 의견도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을 원하게 된다. 인터뷰를 거치며 데이터 분석과 콘텐츠 제작까지 업무에 붙는다. 회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한데 한 자리에 기대하는 역할은 갈수록 커진다.
여러 역량을 갖춘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다만 그 사람이 입사해도 일에는 순서가 있다. 누구에게 제품을 팔지 정하기 전에 제안서를 다듬으면, 고객군이 바뀌는 순간 다시 만들어야 한다. 가입 과정이 막혀 있는데 광고부터 늘리면 내부 팀이 처리할 문제도 커진다.
한 사람을 채용할 예산이 생겼다면, 그 돈으로 이번 달 어떤 과제를 끝낼지 먼저 정해볼 필요가 있다. 시장 진입 전략을 세우고, 제품의 주요 사용 흐름을 고치고, 영업 제안 자료를 만드는 일에 각각 필요한 전문성을 조합하는 방식도 검토할 만하다.
◇ Nano Hiring은 결과물부터 정한다=이 글에서는 업무를 작고 명확한 단위로 정의하고 필요한 전문성을 조합하는 접근을 ‘Nano Hiring’이라고 부른다. 회사가 지금 풀어야 할 문제에 맞춰 전문가의 참여 범위와 예산을 설계하는 방법이다.
1부에서는 채용에 앞서 해결할 업무를 정의하는 이유를, 2부에서는 Fractional Talent로 필요한 판단과 전문성을 확보하는 방식을 살펴봤다. 이번에는 그 관점을 초기 스타트업의 예산 배분에 적용해 보려 한다.
첫 유료 고객을 확보하려는 B2B 스타트업을 가정해 보자. 대표는 고객 미팅을 맡고 내부 개발자는 제품을 만든다. 다음 영업 미팅을 준비하려면 우선 공략할 고객군과 제안 메시지가 필요하다. 잠재 고객이 가입 과정에서 막힌다면 화면 개선안도 있어야 한다. 고객에게 반복해서 보낼 영업 자료 역시 정리해야 한다.
채용 공고에는 이 일을 모두 ‘마케팅’으로 묶기 쉽다. 하지만 결과물을 적어보면 맡길 업무가 달라진다. 고객군과 메시지를 정하는 일에는 시장 진입 전략 경험이, 가입 흐름을 고치는 일에는 사용자 경험 설계 역량이 필요하다.
‘마케터 20시간’이라고 적으면 무엇을 받아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다음 고객 미팅에서 확인할 고객 가설과 질문 정리’라고 쓰면 검토할 결과가 보인다. ‘디자이너 10시간’도 ‘가입 과정의 이탈 원인을 확인하고 주요 화면 개선안 작성’으로 바꿔볼 수 있다. 시간과 비용은 이 범위를 정한 뒤 협의한다.
◇ 600만 원으로 검증 프로젝트를 설계한다면=한 달 동안 새로 투입할 예산이 600만 원이라고 해보자. 아래 금액은 업무를 어떻게 나눌지 설명하기 위한 가상 예산이다. 특정 직무의 급여나 전문가의 시장 단가를 뜻하지 않는다. 대표와 내부 개발팀이 실행을 맡고 있다는 조건에서 만든 예시다.
시장 진입 전략에 200만 원을 배정한다. 전문가에게 기존 고객 미팅 기록과 제안 자료를 전달하고, 우선 고객군과 제안 메시지를 정리해 달라고 요청한다. 결과물에는 대표가 다음 미팅에서 확인할 가설과 질문이 담겨야 한다. 고객에게 직접 확인하는 일은 대표가 맡는다.
제품의 주요 사용 흐름 개선에는 150만 원을 배정한다. 가입부터 첫 사용까지 특정 구간을 살펴보고 내부 개발팀이 구현할 개선안을 만든다. 어디에서 사용자가 막히는지 짚고, 무엇을 바꿀지 정한다. 변경한 뒤 관찰할 내용도 함께 남긴다.
영업 제안 자료와 후속 관리 기준에는 150만 원을 배정한다. 앞서 정한 고객과 메시지를 제안서에 반영한다. 고객이 어떤 질문을 했는지, 다음 연락에서는 무엇을 확인할지 기록하는 방식도 정리한다. 대표는 이 자료를 실제 미팅에 사용하고 반응을 모은다.
나머지 100만 원은 수정과 검증에 남겨둔다. 고객의 반응을 보고 메시지를 바꾸거나 제품 개선 범위를 조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산을 처음부터 모두 계약하면 추가로 확인할 문제가 생겼을 때 움직이기 어렵다.
합계는 600만 원이다. 실제 견적은 과제의 난도와 산출물, 수정 범위, 일정에 따라 달라진다. 세금과 도구 사용료를 포함한 총지출도 따져야 한다. 정규직 채용과 비교한다면 회사 부담 비용과 채용·온보딩에 드는 시간까지 같은 기준으로 계산해야 한다.
이 배분을 실행할 때는 순서도 조정해야 한다. 세 전문가에게 같은 날 일을 시작해 달라고 할 필요는 없다. 대표가 고객 가설을 확인한 뒤 제품 개선과 영업 자료 작업을 이어가면, 앞선 결정이 바뀌어 결과물을 다시 만드는 일을 줄일 여지가 있다.
◇ 세 명의 결과물을 연결할 사람=전략 문서는 완성됐고 화면 개선안과 제안서도 도착했다. 그런데 제안서가 겨냥한 고객과 디자이너가 상정한 사용자가 다르다면 어떻게 될까. 각각의 납품은 끝났어도 회사는 영업을 시작하기 어렵다.
업무를 나눌수록 내부에서 전체 결과를 연결할 사람이 필요하다. 초기 회사에서는 대표가 맡는 경우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때 대표의 조율 시간도 예산 판단에 포함해야 한다. 세 사람에게 같은 맥락을 설명하고 결과를 검토하는 일이 한 사람을 채용하는 것보다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협업 전에 공통 목표부터 적어보자. 이번 프로젝트가 ‘첫 유료 고객을 찾기 위한 제안 검증’이라면 전략과 디자인, 영업 자료가 그 목표에 맞아야 한다. 문서나 화면의 개수만으로 완료 여부를 판단해서는 부족하다.
작업 사이에 넘겨줄 자료도 정해야 한다. 전략 담당자는 어떤 내용을 정리해야 디자인 작업이 시작되는가. 대표는 고객 미팅 후 어떤 반응을 공유해야 하는가. 결과물을 검토할 사람과 수정 범위가 정해져 있어야 다음 작업이 멈추지 않는다.
정보와 권한은 업무 범위에 맞춰 제공한다. 고객 자료와 시스템에 접근할 사람이 누구인지 정하고, 결과물과 작업 기록을 회사에 남기는 방식도 합의한다. 작업을 계속할지, 바꿀지, 멈출지 결정할 시점까지 잡아두면 앞선 계약이 다음 계약으로 자동 이어지는 일을 피할 수 있다.
◇ 내부에 남길 업무를 함께 정한다=Nano Hiring을 검토할 때는 외부에 맡길 업무와 회사가 계속 맡을 업무를 함께 골라야 한다. 매일 고객을 만나며 쌓는 관계, 제품의 핵심 맥락을 이해해야 내릴 수 있는 판단, 팀과 수시로 조율해야 하는 일은 내부에서 이어가는 편이 나을 수 있다.
반면 해결할 문제가 명확하고 결과물을 내부 팀이 받아서 활용할 수 있다면 범위를 정한 전문가 참여를 검토할 만하다. 한 번의 진단이나 특정 구간의 설계, 초기 운영 체계를 정리하는 일이 그 출발점이 된다.
계약할 때는 일이 끝난 뒤 회사에 무엇이 남아야 하는지도 묻자. 제안서의 문구를 왜 그렇게 썼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개발팀은 화면 개선의 이유를 이해하고 다음 수정을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완성 파일과 함께 판단의 근거가 넘어와야 내부 팀이 매번 같은 설명을 요청하지 않게 된다.
◇ 한 달 뒤의 채용 결정을 준비한다=검증 프로젝트가 끝났다면 비용과 결과를 나란히 놓고 살펴보자. 어느 고객군에 집중할지 정해졌는가. 제품에서 먼저 고칠 구간을 찾았는가. 영업 미팅에서 반복되는 질문과 다음 행동이 기록돼 있는가. 외부 전문성에 쓴 돈이 회사의 다음 실행을 얼마나 구체적으로 만들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대표가 조율에 쓴 시간과 결과물을 다시 손본 횟수도 함께 봐야 한다. 계약 금액이 작아도 설명과 재작업에 많은 시간이 들었다면 업무를 나눈 방식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
이 기록은 다음 채용의 근거가 된다. 고객과 제안 메시지는 정리됐는데 매일 해야 할 영업 업무가 늘었다면 영업 담당자에게 맡길 역할이 분명해진다. 제품 개선과 팀 내 조율이 반복된다면 내부 제품 역량을 보강할 시점인지 살펴볼 수 있다. 특정 전문성이 가끔 필요하다면 범위를 정해 외부와의 협업을 이어가는 선택도 남는다.
다음 채용 공고를 쓰기 전에 이번 달 끝낼 업무를 한 장에 적어보자. 각 업무 옆에 결과물을 검토할 사람과 내부에서 이어갈 사람을 써보면 좋다. 그 빈칸을 채우는 과정에서 지금 채용할 역할과 먼저 검증할 과제가 드러난다. 채용 예산을 어디에 쓸지 결정할 때도 그 한 장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다음 편에서는 큰 기업의 내부 인재 운영 방식에서 작은 스타트업이 가져올 수 있는 원칙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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